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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능력의 위기'와 개헌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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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
정치외교학

1987년 6월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하며 행진한 것을. 무엇이 이들을 환호하게 만들었을까.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6·29 선언 때문이었다. 새로운 헌법 제정으로 이른바 ‘87년 체제’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87년 헌법이 지금 비판의 도마에 올려지고 있다. 국회의장에 이어 민주당 원내대표가 개헌 논의를 제안하고 나섰다. 개헌선인 200명을 넘는 국회의원과 과반이 넘는 국민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다만 열쇠를 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반대 입장이다. 개헌 논의가 블랙홀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왜 개헌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일까? 87년 헌법이 원래 비민주적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민주적이지만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일까? 전자의 경우는 아닌 듯하다. 87년 체제의 민주적 본질에 대한 도전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87년 헌법의 효용과 효율을 문제 삼고 있다.

 돌이켜 보면 87년 헌법은 쓴 음식을 먹은 후에 마신 맹물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맛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신과 5공의 탄압에 워낙 시달린 탓이었다. 그래서 ‘정통성의 위기’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으로 믿었다. 새로 탄생할 체제의 효율이나 효능 같은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4반세기. 지금 권력의 정통성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다. 대신 경제성장, 복지, 일자리, 안보 같은 것들의 해결능력을 문제 삼고 있다. 복지와 같은 분배의 문제가 우리 민주정치에 ‘과부하(過負荷)’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87년 체제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통성은 정치체제 유지에 절대적인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결코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통치능력이 없는 정치체제는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구 민주국가들처럼 우리도 지금 이런 ‘통치능력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현실을 한번 보자. 북한의 천안함 침몰이나 연평도 포격사건 후 병역 면제자들로 가득 찬 지난 정권의 안보대책회의를 보고 어떻게 정부의 안보 능력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 국민 대통합, 창조경제, 일자리 창출 등을 내걸었지만 극한적 정치 대결 속에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왜 이런 통치능력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집중 현상을 문제로 지적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치를 극단적 대결로 내몰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권형 권력구조로 통치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분권형으로 권력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타협에 의한 통치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제왕적 대통령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청와대와 관료 복합체에 의한 의회 권력의 선점(先占)현상이다. 이 ‘청관복합체’가 독주하면서 의회권력은 무력화되고 있다. 이에 야당의 대응은 결사항전으로 나타난다. 어느 외국 정치가의 풍자처럼 이런 체제에서는 ‘정부는 힘이고, 정치는 패권을 위한 투쟁이며, 정당은 이를 위한 군대’일 뿐이다. 결과는 승자독식과 패자불복의 제로섬적 대결 속에 발생하는 통치능력의 위기다.

 ‘통치하는 것은 발명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바로 통치능력의 위기에 직면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런 원칙을 실천에 옮긴 나라가 독일이다. 분권형 정치제도의 발명으로 통치능력의 위기를 극복했다.

 물론 우리는 87년 헌법의 공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통치불능이 계속될 경우 문제가 보다 심각해질 수 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정치체제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런 불만은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안철수 현상’과 같은 정치세력의 재편 움직임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체제 내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다. 서구 민주국가들이 겪었던 현상이다. 우려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이석기 현상’과 같은 급진적 세력의 토양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청년 취업자가 1980년 이래 최저라는 보도의 심각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통치능력의 위기를 치유할 수 있는 ‘정치발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개헌 논의도 이런 치유책의 모색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블랙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