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교복나눔, 3만벌 장터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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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구시 달서구 이곡2동 주민센터 안 달서지역자활센터에서 자활사업 참여자들이 교복나눔에 판매될 교복을 손질하고 있다. 달서구청은 헌 교복을 기증받아 손질한 뒤 다음 달 22일 구청 충무관에서 장터를 열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프리랜서 공정식]

13일 오후 대구 수성구 정화여고 앞 분식집. 고3 학생 3명이 라면을 먹고 있었다. 다음달 졸업하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교복 아닌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학생들은 “우리 반 40여 명 중 절반쯤이 연말 수성구청에 교복을 기증해 아예 교복이 없다”고 말했다.

 가족 중 중·고 신입생이 있다면 30만원 하는 비싼 교복을 굳이 새로 사지 않아도 된다. 이 학생들처럼 교복을 대물림하겠다며 기증한 중고 교복 수만 벌이 곧 판매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대구 각 구청은 올해로 6년째 교복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학교별로 중고 교복을 기증받아 구멍 난 곳을 바느질하고 다림질하고 있다. 손질된 교복은 다음달 판매를 시작한다.

 올해 대구지역의 교복나눔 규모는 중·고교 167곳에 3만700여 벌. 지난해 160여 곳 2만9000여 벌보다 규모가 더 커졌다. 중고 교복 판매는 대구 남구에서 시작된다. 남구청은 지난해 12월부터 지역 중·고교 16곳에서 교복을 기증받아 손질해 다음달 13일 구청 드림피아홀에 2000여 벌을 내놓는다. 이어 중구와 달서구·수성구·북구도 중고 교복을 다음달 25일까지 잇따라 판매한다. 비영리 단체인 아름다운가게와 행복한가게, 북구자원봉사센터 등은 지역별로 교복 대물림을 돕는다. 이들 단체는 구청이 판매하다 남은 교복을 수거해 3월 말까지 판매를 이어간다. 또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와 대구시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053-231-0511), 중구청 2층에 마련된 ‘상설 교복나눔 코너’도 이용할 수 있다. 교복 가격은 재킷 5000원, 와이셔츠 1000원, 치마와 바지 3000원 정도다. 구청의 판매 수익금은 새 교복 구입비로 다시 쓰인다. 각 구청은 저소득층 가정의 신입생들에게 이 돈으로 새 교복을 사서 전한다.

 대구의 교복나눔은 2009년 달서구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첫해였지만 시민들이 달서구청에 몰리자 이후 2011년 남구와 중구, 2012년 수성구 등 대구 전역으로 점차 확대됐다. 이 행사는 해마다 500m 이상 긴 줄을 서며 중고 교복을 사려는 진풍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나혜랑 장학사는 “오랫동안 불황을 겪으면서 ‘아낄 땐 아낀다’는 정서가 교복나눔 열풍을 만든 것 같다”며 “구청까지 나서 수개월간 교복 대물림을 준비하는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교복나눔 열풍이 불기 시작한 2010년 교복 물려주기에 대한 조사를 한 결과 대구·경북의 절반(54.2%) 이상이 “교복 물려주기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서울(49.5%)보다 높은 수치였다

  송현여고 최명순 교사는 “신입생들이 중고 교복을 입고 입학해도 놀리는 법이 없다. 오히려 ‘대물림 교복’이라며 당당히 말하는 학생들까지 있을 정도”라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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