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힘의 공백' 메우기 … 이란에 손 내미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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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라크 철군과 함께 중동에서 발을 빼고 있는 미국이 ‘힘의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이란과 전략적 제휴를 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10년 만의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해빙 무드의 양국을 묶어주는 것은 알카에다라는 ‘공공의 적’이다.

 이란은 최근 이라크 내 알카에다 연계 반군과 싸우고 있는 이라크 정부군에 군사 지원 의사를 비췄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수도 바그다드 서쪽 팔루자와 라마디를 장악하면서다. 안바르주에 속하는 이 두 도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수니파 저항군들의 거점이었다. 이 요충지들이 알카에다 세력에게 넘어가는 것은 10년간 1조 달러의 군비와 4000여 명의 인명 피해를 감수한 미국으로선 허무한 결과다. 이와 관련해 무함마드 헤자지 이란혁명수비대 부사령관은 6일(현지시간) 관영 IRNA통신을 통해 “이라크가 요청한다면 병력을 제외한 군 장비와 자문을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라크 상황을 심각하게 판단하면서도 “이것은 그들 자신의 싸움이며 그들이 궁극적으로 이겨야 하고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지상군 파견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끝없는 중동지역 전쟁에 영원히 개입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는 게 중동에서 발을 빼려는 미국의 입장이다. 시아파 집권세력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란이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에 구원의 손을 내민 것이다.

 미국은 최근 또 다른 중동 현안인 시리아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란에 유화 제스처를 보였다. 오는 22일 재개되는 시리아 평화회담(제네바2)과 관련해 “이란이 공식적으로 참가하진 못해도 측면에서 시리아 사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케리 장관)이라고 말했다. 비록 이란이 이런 제안을 “존엄에 걸맞지 않다”고 거절해 무산되긴 했지만, 미국이 시리아 사태 해결의 로드맵에서 이란의 지분을 인정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6일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회의 전직 고문인 아지즈 샤모하마디를 인용해 “미국과 이란이 공통 접점에 다가가는 것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이란의 개혁파 저널리스트는 NYT에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로 최근 이란과 미국의 관계를 요약했다. 중동 땅의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에 힘을 가진 중재자가 없는 형국에서 양국이 전략적 협조를 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9·11 테러 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대테러 전쟁을 벌일 당시 이란 측과 비공개 채널을 가동하며 탈레반 관련 정보를 제공받았듯 말이다.

 미 군사전략지 스트랫포는 한발 더 나아갔다. 5일 ‘전략적 역전: 미국·이란·중동’이라는 글에선 “루스벨트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스탈린의 소련과 협상하고, 닉슨이 마오쩌둥의 중국과 수교했듯 향후 10년간 더 위험한 세력을 상대하기 위해 전략적 동맹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변수는 있다. ‘아랍의 봄’ 이후 리비아가 분열되고 시리아가 파탄 난, 이른바 ‘신중동(New Mideast)’에선 터키·이란·이스라엘 등 비아랍국가들의 존재감이 커졌다(월스트리트저널 7일자 제라드 사이브 칼럼). 걸프국가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마음 편할 리 없다. 수니파의 맏형 사우디는 미-이란 핵협상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자리를 거절하는 식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전통의 우방인 사우디나 나아가 이스라엘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 이란과 우호관계를 형성하는 외교적 지혜가 필요한 셈이다. 올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미 의회 내 강경파의 반발 역시 오바마 행정부가 떠안은 숙제라고 스트랫포는 지적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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