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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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추석 대목을 앞두고 정부는 종합 물가 대책을 발표했다. 추석 대목과 연말은 이 나라의 물가 「패턴」으로 보아 언제나 중요한 고비라 하겠으며 미리 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우선 심리적인 불안요인을 배제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또 추석대목을 이용해서 가격을 올려보겠다는 잠재의식에 경고를 주는 것도 될 것이다.
이 밖에도 보유 양곡을 대량방출하고, 13개 주요 제조상품에 대해서 생산 책임제를 실시한다하므로 물량공급 면에서도 물가 상승의 제동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관허 요금의 인상을 불허하고, 물가 조작·매점매석도 단속한다는 것이므로 발표된 종합대책이 차질 없이 집행된다면 추석 물가는 어느 정도 안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물가 대책과 문맥이 같은 이번 추석 물가 대책은 역시 그 동안의 안정실적과 대동소이한 효과밖에는 발휘할 수 없을 것이므로 소비자들은 일단 최근의 물가동향에 준하여 지출계획을 짜보는 것이 좋을 줄로 안다. 최선의 물가 대책이 종합적으로 집행된다 하더라도 행정지도의 힘이 미치는 범위를 상도할 때 이른바 「바스킷·프라이스」가 실질적으로 안정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소비자의 조화된 행동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의 물가 대책이 물가지수를 중심으로 하여 집행되어서는 아니 되겠다. 지수상의 「웨이트」가 큰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안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겠으나, 만의 일이라도 고시가격이 존재하니까 소비자의 실질 구매가격을 도외시해도 지수가 안정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된다. 안정은 소비자가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실질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주기 바란다.
또 일상적으로 소비자가 구매하는 상품 중에는 물가지수에 반영되지 않는 것이 지수에 반영되는 것보다 월등히 많다. 그러므로 물가지수의 안정이전에 소비자의 입장에서 시장동향을 관찰하는 자세를 가져주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추석 물가의 안정을 위해서는 특히 업계의 자제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국제원자재가격이 2배 이상 오른 품목이 적지 않으므로 해당업계로서는 가격인상이 불가피할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남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안정이 위협된다면 국민경제에 지대한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대국적인 입장에서 지나친 사리의 추구는 경계해야한다. 물론 기업이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적어도 합리성을 전제로 하여 정책을 다루는 당국이 적자의 누적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인내하는 미덕을 보여야 하겠다.
끝으로 추석 물가의 안정을 위해서는 소비자의 자제 또한 불가피하다. 안정정책의 강화나 업계의 자제만으로는 왕성한 소비를 감당하기 어려온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우리의 산업구조는 수입원자재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므로 소비증대는 가격상승이 내포된 원자재의 수입증대를 통한 원가체계의 급속한 교란을 불가피하게 하기 때문이다.
수입원자재가격이 국내 물가에 반영되는 속도는 국내소비증가율이 높으면 높을 수록 빨라지는 반면, 낮으면 낮을수록 늦어진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은 차제에 확인하여 소비를 줄여 나가야 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제품재고가 쌓일 수 있도록 소비수준이 급속히 떨어지기 전에는 실질적인 안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소비자의 내핍은 이 시점에서 어떠한 정책집행보다도 더 소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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