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경기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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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은행은 경기 동향을 신속히 예고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경기 예고 지표를 작성 발표했다.
그 동안 한국은행은 경기 동향 지수와 기업가 예상 조사를 실시하여 소박하나마 단기적인 예측 작업을 해 온 실속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 다시 예고 지표를 내놓은 것이다.
1백50개의 개별 경제 지표에서 14개 지표를 선택하여 작성한 경기 예고 지표는 개별 지표가 표준치를 상회하는가, 아니면 하회하는가에 따라서 과열 또는 과냉 상태를 가름하고 이를 종합하여 전체 경기 상태를 평가 예고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예고의 신속성이라는 면에서는 상당한 장점을 가진 반면, 그 신뢰성에는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적극 발전시켜 정부측이나 기업 측이 함께 활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선 경기 예고를 할 수 있으려면 경기 순환에 관한 과거 자료가 객관적으로 정리되어 이론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므로 한은으로서는 한국 경제의 경기 순환에 관한 「모델」을 완성하여 이에 따라서 지표를 선정하고 표준 예고치를 결정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경기 예고 지표를 발표한 이상 이의 근거가 될 이론화한 한국 경제의 경기 「모델」과 표준치의 근거를 공개해서 민간도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결함을 인식한 연후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성의와 친절을 기대하고자 한다.
둘째, 경기 예고 지표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용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 이로써 정책 집행 기술이 일보 전진하게 되는 것인 만큼, 시행착오의 여지는 줄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고 지표가 단순한 예고로 그친다면 정책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예고 지표가 시사하는 정책적 의미를 평가해서 이를 기초로 해서 회기 대책을 어떻게 조정해 나갈 것인가 하는 방침이 세워져야 한다. 따라서 예고 지표가 정부 민간에서 안심하고 함께 수용될 수 있을 만큼 신뢰성을 갖게 해야 할 것이다.
또 예고 지표에 따른 정책 조정은 당연히 지표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체성이 있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임도 부인할 수 없다. 정책 조정이 지표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정책의 과학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의 경우처럼 경제의 규모나 구조, 그리고 정책 집행 구조가 급변하는 경우에는 예고 지표의 객관성·현실 반영성 등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적절한 시점에서 지표의 조정과 표준치의 재설정이 불가피하리라고 예상되는데 이 경우 편의적인 조정 요인이 개입될 여지가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예고 지표의 정책적인 함축이 큰 만큼 지표의 세련도와 구도를 더욱 높여 과학적인 경제 정책 집행의 기틀을 하나하나 잡아 나가도록 관계 당국은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끝으로 경기 예고 지표에 따라서 신속하게 정책 조정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에 부합하는 경기 정책 수단도 그에 따라서 시급히 개발되어야 한다. 우리의 경우 경제 정책 집행 수단의 체계는 아직도 이론화되지 못한 상상에 있는 것이며, 그 때문에 경제정책 수단과 일반 행정 수단이 혼용되는 미개발 상태는 차제에 탈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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