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근절 방안 빠진 공공기관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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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2조원 이상인 대형 공공기관이 내년 9월까지 부채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기관장이 해임된다. 부채가 많은데도 연 3억~5억원의 보수를 받는 기관장 43명의 내년 연봉은 최대 26% 삭감된다. 수출입은행·정책금융공사·한국투자공사 기관장의 경우 연봉이 현재 5억2000만원에서 3억8000만원으로 1억4000만원 깎인다.

 기획재정부는 11일 이런 내용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했다. 박근혜정부 임기 동안 계속될 공공기관 개혁의 본격화다. 기관장을 압박해 과도한 부채를 줄이고 방만경영을 근절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먼저 한국토지주택공사(LH)·수자원공사·철도공사·도로공사·한국전력 같은 12개 공룡급 공공기관이 부채 과다 중점관리 대상으로 지정됐다. 이들은 강도 높은 ‘부채 다이어트’를 통해 평균 부채비율을 현재 220%에서 2017년 200%로 낮춰야 한다.

 1인당 복리후생비가 최대 1488만원에 달하는 한국거래소와 마사회·코스콤 등 20개 기관은 방만경영 집중 감시 대상에 올랐다. 현오석 부총리는 “공기업은 부채 내역과 단체협약 이면합의를 숨김없이 공개해야 하고, 내년 9월 중간평가에서 실적이 미흡하면 기관장 해임을 각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개혁이 성공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언뜻 보면 강한 개혁 드라이브가 걸린 것 같지만 용두사미가 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공기관 개혁의 뇌관인 낙하산 인사에 대한 견제장치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역대 정부가 1년차에 예외 없이 개혁의 칼을 뽑았다가 슬그머니 거둔 것도 낙하산 인사라는 원죄에 번번이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에 부닥친 낙하산 기관장이 이면합의를 통해 요구사항을 들어주면서 방만경영이 고착화되는 과정이 반복돼 왔다. 이날만 해도 지역난방공사 신임 사장으로 에너지 분야와 거리가 먼 것으로 평가되는 김성회 전 의원이 선임됐다.

 ‘낙하산 근절’을 약속할 수 없는 정부가 대신 꺼낸 카드가 기관장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벌써 “정책 실패와 낙하산 인사의 책임을 공공기관에 미루는 행위”라며 집단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낙점한 거물급 기관장을 기재부가 해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이들이 직접 정치권과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면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종=김동호·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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