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혁명처럼 … 우크라이나 대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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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우크라이나 시위대가 1일(현지시간) 불도저를 동원해 수도 키예프의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경찰 방어선을 돌파하려 하고 있다. [키예프 로이터=뉴스1]

2010년 집권한 우크라이나의 친 러시아 성향 보수파 정권이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다.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중단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시위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전국적 소요 사태로 확대됐다.

 2일(현지시간) 시민들은 수도 키예프에서 12일째 시위를 이어갔다. 그중 수천 명은 2004년 ‘오렌지 혁명’의 상징인 독립광장에서 밤을 지새웠다. 독립광장에는 “혁명”이라는 구호와 함께 노랑·파랑의 우크라이나 국기와 함께 EU 깃발이 휘날렸다. 시위 지도자인 유리이 루첸코 전 내무장관은 “이것은 시위가 아니라 혁명이다”고 강조했다. 시 청사도 시위대와 야당에 점거된 상태다. 노조는 파업을 벌이며 가세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1일 키예프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의 중심부에서 시위를 금지하는 법원의 명령을 받아냈다. 하지만 시위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날 서부 도시 리비프에서도 약 5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일요일인 1일 시내 중심부를 가득 메웠다. BBC 등 외신들은 30만∼35만 명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무효화시켰던 오렌지 혁명 이후 9년 만에 최대 시위 인파다. 도심은 폭력으로 얼룩졌다. 시위대는 불도저를 몰고 나와 경찰의 방어선을 공격했다. 돌과 화염병도 난무했다. 시위대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했다. 경찰은 최루 가스와 최루탄으로 맞섰다. 시위 진압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곤봉을 휘두르고 길에 넘어져 있는 시민을 발로 차는 모습이 외신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날 경찰과 시위대 양 측에서 각각 100명 이상이 부상했다. 일부 외신 기자들도 경찰의 곤봉에 맞았다.

 시위는 지난달 29일 특수 경찰의 독립광장 시위대 해산 작전으로 인해 격화됐다. 경찰은 광장을 점거 중인 수백 명의 시위자를 강제로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대학생 수십 명이 다쳤다. 해산 작업의 명분은 광장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21일 EU와의 FTA 추진 중단을 발표했다. FTA를 시작으로 EU 가입을 단계적으로 진행하려다 갑자기 방향을 튼 것이었다. 배경에는 러시아의 압박이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뒤 친러시아 세력과 친서방 세력이 대립하고 있다.

 세르히 료보츠킨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사임하고 발레리 코리야크 키예프 경찰청장이 사표를 내는 등 정권의 분열도 시작됐다. 집권당인 ‘지역당’ 소속 국회의원 2명이 탈당하기도 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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