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와 진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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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해가 서쪽 하늘 저만큼으로 기울고 아래채의 그림자가 마당을 세로로 절반쯤 덮으면 어머님은 꼬마 손을 붙잡고 동구 밖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로 가신다.
그러면 나는 빨랫줄에 마른 옷들을 걷이 개키고 청소를 말끔히 하고는 밭에를 다녀와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오늘도 우리 가족의 즐거운 식사를 위해 칼국수를 하는 것이다.
파·마늘·고춧가루·참기름·깨소금·풋고추를 넣어 간장을 맛있게 만들고 채 쓴 애호박과 부추로 웃고명을 볶고 오이챗국을 만든 다음 물을 얹어 놓고 국수 반죽을 한다. 밀가루 3에 콩가루 1의 비율로 반죽을 해서 오래 쳐대야 국숫발이 매끈하다.
남들은 더운데 기계에 뽑아놓고 삶아 먹지 왜 그러느냐고 하지만, 시어머니를 비롯해서 아빠와 애들까지 뜨거운 칼국수를 즐기 시기에 나는 오늘도 즐겨 칼국수를 한다.
날씨가 무더운 요즘 자꾸 시원한 것, 찬 것 하다보면 자칫 배탈이 나기 쉽고 「스태미너」가 떨어지기 쉬운데 무더운 여름 땀을 흘리며 영양이 손색없게 만든 뜨거운 칼국수는 먹은 뒷맛이 개운하고 속이 편해서 좋다.
퇴근 시간이 정확한 아빠도 언제나 한자리에 앉아서 저녁식사를 한다. 식구수대로의 빈 그릇에 계란 한 개씩을 깨뜨려 놓은 후 뜨거운 국수를 퍼서 내 놓으면 아빠는 음식점에서 파는 국수에 비할 바 아니라며 더 청한다.
내가 칼국수만 하면 일곱살짜리 개구장이가 환성을 치며 좋아하니 국수를 썰고 마지막에 손바닥만하게 남겨주는 국수 꼬리를 구워 먹는 것이 즐거워 더 좋아한다.
집에서 손수 밀농사를 지어 빵아 놓은 밀가루이기에 맛도 더 구수한 것이 내 솜씨껏 빵도 변화있게 쪄주면 아이들 간식비가 모조리 돼지 저금통으로 들어간다.
요즘같이 부정 식품이다, 유해 식품이다 해서 주부들 신경을 곤두세우는 현실에 안심하고 애들에게 영양빵을 먹일 수 있으니 여러 가지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명주 <경북 상주군 상주읍 화산 1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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