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60년간의 현대미술사를 정리하는 거창한 회고전을 워낙 단시일에 서두르다 보니 수작과 기념적 작품을 모으진 못했다. 국립현대미술관측엔 그럴 능력도 없으려니와 예산의 뒷받침도 미흡해 미술계인사들의 협조 초차 충분히 받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일부 미술가들의 방관 내지 무성의는 이 전람회를 한층 망쳐 놓았다.
미술 60년전 관계자들은『생각하던 것보다 홀륭하다』고 호평한다. 그것은 전문가도 예산도 없는 미술관의 소수인원으로 1백49명의 작품 3백81점을 전시했다는데 대한 치하의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좋은 작품들을 얼마나 끌어냈느냐고 따진다면 전람회의 거창한 명칭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기 그지없다.
작품 수집이 지극히 상식의 범위 안에서만 맴돌았고 또 추진위원들의 견문 안에서 그치고 말았다.
이름조차 끼지 못했던 옛 고가가 적지 않은가 하면 작품이 많은 작가의 경우에도 중요 작품의 발굴을 소홀히 한 것이다. 사설 미술관측에서는 엄선된 작품을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전람회를 열었다는 그 자체의 실적만오로 만족해 하는 형편이다.
물론 김인승, 이유언 몇몇 화가들은 이미 뿔뿔이 홑어져 있는 구작들을 체크해 자신들의 중요 작품을 내놓았다. 그런 반면에 동양화나 서예의 경우 초기작가와 원로작가의 작품을 수집함에 있어 그저 적당히 갖다 걸었다는 느낌이 든다.
안심전· 조소림· 이도영 같은 분들의 서화를 근대 미술속에 포함시켜서 되겠는가하는 점도 문제이지만 만약 포함할 수 있다면 그들의 작품 가운데 근대미술의 요소를 한결 지닌 것으로 선택하든가 혹은 당시의 수작을 보여야 마땅하다. 더우기 그들의 유작이 허다하게 현존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 전시회를 망쳐놓은 대표적 예는 일부 현역 중견작가의 작품이다. 가령 박득순씨의 경우 3집의 출품작이 모두 작가가 가지고 있는 근작들.
말하자면 팔다 남은 찌꺼기를 또다시 옮겨다 놓은 셈이 되었다. 60년의 미술을 돌이켜 본다든가 평상하기엔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그렇다고 해서 미술관이 그의 중요 분작을 물색해낼 염두도 없었던 것 같다. 더구나 현역으로서 유경채· 김영창· 변영원· 최덕휴· 이동수· 박석활· 김창억씨등 아예 이름마저 없는 작가들은 어찌된 일일까.
대체로 추진위원이 된 소수작가들의 작품은 수집이 성실해 그에 따라 최대한(5점) 전시 된데 비하여 여타의 작가들은 그리 좋은 인상이 못된다. 근래서 미술계의 일각에선 비난이 분분한데, 이점은 오랫동안 미술계가 안고 있는 암적 요소의 하나. 역시 이러한 전람회가 좋은 것이 되려면 미술사가와 평론가 진이 하루속히 육성돼 공정하게 평가하고 재단하는 기능을 갖추는 길밖에 없다.
60년 미술사의 작가명단마저 작성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설정에서 중요작가의 중요작품을 한목에 모아 놓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해방의 격동과 전난을 겪는 동안 없어진 것도 부지기수.
더러는 북한에 떨어져 60년 미술사에서 제외된 층도 있다. 결국은 흩어져 있는 작품들의 소장자들이 스스로 협조해 주지 않는 한 꾸미기 어려운 일.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장에서 선뜻 내놓고 기증까지 한 윤효중 작 『현명』은 본보기가 될만하다.
그거야말로 일제때부터 원멱층의 손에서 옮겨다닌 일화 많은 조각품으로 이제는 미술관에 영구보존 되게 되었다.<이종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