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판단으로 북한 공격 못 하게 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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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 정부가 일본에 집단적 자위권 논의와 관련해 3대 원칙을 개진한 것은 과거사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결코 이를 용인해선 안 된다는 국내 여론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일본 내 논의를 방치할 수도 없다는 딜레마 때문이다. 현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적 자문기구인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는 집단적 자위권의 광범위한, 거의 전면적 허용을 주장하는 내용의 제언서를 조만간 확정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총리관저·외무성·방위성, 나아가 내년 1월 출범할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최종 조율하게 된다.

 현재 미국을 포함한 유럽연합(EU)·호주 등 국제 사회가 일본을 적극 지지하고 나서고 있는 상황도 한국으로선 부담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옹호론은 미국 내에선 정부뿐 아니라 헤리티지 재단 등 유력한 민간 싱크탱크들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로빈 사코다 연구원은 최근 ‘미국 관점에서 본 일본의 집단 자위권’이란 보고서에서 “이는 미국과의 협력 및 전략적 조율을 강화할 수 있는 환영할 만한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유력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AC)도 “과거사 문제로 갈등하는 한국·중국의 우려는 있지만 일본이 군사강국으로 부상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려 당장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며 “아베 정권의 군비강화(militarization)는 경제·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5일 부임한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도 24일자 요미우리(讀賣)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집단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해석 변경은) 최종적으로 일본 국민의 문제”라며 “미국과 일본이 공통의 과제·위협에 대처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케네디 대사는 “일본만큼 중요한 (미국의) 동맹국은 없다”고도 잘라 말했다.

 ‘3대 원칙’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 헌법과의 정합성을 강조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9차례의 헌법개정에도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다. 북한이 한국 영토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동맹국인 미국을 향한 미사일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북한 상공 내에서도) 요격할 수 있다”는 일본 일각의 주장에 쐐기를 박는 측면이 있다. 즉 “한반도 어느 곳에라도 일본의 자체 정보에 입각한 자의적인 판단과 행동은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는 ‘통일 이후’를 상정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 정부는 3대 원칙에는 넣지 않았지만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빌미 삼아 독도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 향후 미국 측에 ‘독도는 결코 미·일 안보조약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서울=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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