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큰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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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금 김 선생님께선 머리가 희끗희끗 해지셨을 것이다. 어쩌면 교단을 떠나 흙 내음 맡으며 보리밭이랑 길을 거니 실지도 모른다.
우리가 6학년 때 담임을 하셨다.
선생님께서 큰 눈을 껌벅 껌벅 하시면 마치 들판에 누워있는 소 생각이 나지만, 그분은 그렇게 순하지만은 않으셨다. 때론 엄포에 눌려 무섭기도 했었다.
어느 날인가 한 아이가 공부 시간에 울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 아이 앞에 가셔서 이유를 물으셨다. 그 앤 답답하게도 끝까지 아무 말을 하지 않아, 우리들 생각은 선생님께서 매를 드실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선생님을 『배가 아픈게로구나』하시고는 곧 수업을 시작하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방과후 선생님께선 그 아이의 집을 방문하여 어려운 형편을 아시고 봉급 중에 얼마를 덜어 양식을 받아주셨다고 했다.
선생님은 언제나. 활발하셨고 남자다운 박력과 믿음직한 의지가 보였었다. 가난한 시골이었기에 배를 굶주리거나 몰지각한 부모들에 의해 힘을 빼앗겨 기운 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애들을 불러모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앞날의 아름다운 꿈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조금의 실망도 보여 주시지 않던 선생님의 모습. 오늘보다는 내일을, 그리고 또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사는 거라고 말씀하던 선생님. 나와 반 애들은 그 선생님의 맑고 어질고 엄한 눈빛에 의해 자라난 듯 싶다.
엄마 아빠의 말씀보다도 선생님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던 어린 날. 세상에서 우리 선생님이 가장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세월이 흐르고, 그 어리던 내가 자라며 꿈꾸던 여 선생이 되어 조그만 시골 학교에서 천진한 꼬마들과 생활하게 되었다.
코흘리개 아이들과 손을 잡고 뛰논다. 문득 생각난 내 어린 시절, 나도 곧 선생님처럼 내가 가르친 애들에게 먼 훗날에 생각나는 선생님이 될까 생각해 본다.
장정숙 <경기 화성 화수 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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