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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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어린이까지 애송하는 소월의 시 「진달래꽃」이다. 왜 하필이면 진달래꽃이었을까. 봄에 뒷산에 피는 꽃은 하필 진달래만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별의 애처로운 정경의 「이미지」는 진달래처럼 잘 어울리는 꽃도 없다. 붉은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은 담담한 색깔의, 따스하고 밝은 봄빛마저 수줍다하여 조용히 얼굴을 가리듯 피었다 지는 게 진달래다.
그래서 진달래는 산에서만 피는가 보다. 우리네 구성진 맛에도 제일 어울리는 것 같다. 원래가 진달래꽃은 질서를 상징하고 또 욕망을 억제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소월이 느꼈던 것 같은 가슴을 베는 듯한 쓰라림은 진달래만이 달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국의 시인들이 진달래를 노래하지 않는 것도 이런 때문인가 보다. 물론 진달래과에 속하는 꽃의 수는 오히려 서양에 더 많다. 수백 종이나 된다.
꽃의 색깔만도 홍·일·자·황 등 가지각색이다. 또 서양에서는 꼭 봄에만 피는 것도 아니다. 8월의 무더위 속에서 피는 것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진달래에는 한국만의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이 있다. 식물학에서도 특히 「한국진달래」라 하여 다른 「아시아」 산악지대에서 보는 꽃과는 구별하고 있다. 그러니 중국의 옛 시인들이 진달래를 잘 노래하지 않았던 것도 납득이 갈 듯하다. 물론 『구강 삼월 두 견래, 일성 최득일 지개』라는 구절에서 백낙천도 진달래꽃을 노래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백낙천의 두견화와 『송간 세로에 두견화를 붙여들고…』 하며<상춘곡>을 부를 때 정극인이 본 두견화는 꼭 같은 진달래가 아니었을 것이다.
정철의 관동별곡을 보면 진달래는 또 척촉이라 불리던 때도 있었는가 보다. 왜 척촉 또는 산 척촉이라 했는지는 몰라도 두견화란 이름은 촉의 망제가 죽은 다음에 그 혼이 두견새가 되고, 그 무렵에 피는 진달래꽃을 두견화라 했다는 전설도 있다.
시골에서는 진달래를 「참꽃」이라 부른다. 철쭉꽃은 또 「개꽃」이라 하고….그건 진달래꽃잎은 먹을 수 있다는 뜻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진달래가 피는 계절이 됐다. 그러나 『앞 언덕 왜 철쭉과 뜰 앞에 진달래는 웃는 듯 반기는 듯 면면이 붉어있고…』 하며 전원 사시 가를 부르던 옛 시인의 한가함이 우리에게는 이제 없다.
『진달래가 지면 어린 나라가 무너집니다』라고 김광섭도 노래했지만 그 진달래를 우리는 못 본지 퍽 오래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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