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일본진의 속의 한·일 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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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의 「일·조 우호촉진의원연맹」의 북괴방문단과 북괴 국제무역 촉진위 사이의 무역확대 합의서 조인은 한·일 기본조약체결이후 우호·협력관계를 증대시켜 온 한·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특히 이번 합의서 조인은 그동안 숱한 기회를 통해 고개를 내밀어온 일본 일부의 두개의 한국론을 현실화하려는 움직임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낸 중요한 「사실행위」이기 때문에 한국에 심대한 충격파를 일으키고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한국의 안보를 저해하게되는 심각한 사태』(외무부성명)라고 공식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정부안의 비공식견해는 『북괴를 고립화하고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려는 한국정부의 정책에 대한 정면도전』 『한·일 기본조약마저 저해하는 행위』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더우기 지난 25일의 국무회의는 제1차적으로 일본의 자율적인 시정조치를 기대하되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응분의 저지책을 단행하겠다는 결의를 천명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일련의 정부내의 움직임은 북괴가 관련된 한·일 문제에 관해 정부가 취해온 정책노선과는 크게 다른 변화를 보여주었다.
한·일 조약체결이후 여러 고비에서 일·북괴간의 접촉 내지 거래를 『두개의 한국론 대두』라는 관점에서 신경질적으로 「체크」했던 사례가 한동안 반복된 후 69년께부터 정부의 정책은 『한·일간의 우호·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일·북괴간의 사소한 접촉을 압도한다』는 「오버섀도우」정책으로 전환되었다.
즉 한·일간의 적극적 측면(교류·통장협력)을 강화·유지하는 것이 소극적 측면(일·북괴간 거래)을 억누를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관점에서 택해진 정책이었다.
그래서 일·북괴간에 인도적 목적을 띤 인사교류, 「스포츠」교류, 민간 「베이스」상거래, 일본기자의 도항 등을 묵인했고 사례가 생길 때마다 항의를 되풀이하는 외교는 지양되었다.
그러나 이번의 무역확대합의는 묵인할 수 있는 한계선을 훨씬 뛰어넘은 중대하고 기본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일·북괴간 무역확대합의서 조인은 ①무역량의 확대라는 사실문제와 ②통상대표부설치와 연불수출 등 일본정부의 조치에 따라서는 중대한 의미를 갖게되는 정치적·법적 문제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합의서를 조인한 의원단이 정부가 부여하는 어떤 형태의 대표자격도 갖지 않았을 뿐더러 그러한 행위에 대해 일본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도 보증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이번의 합의서 조인은 아무런 법적 구속력도 없는 하나의 「사실행위」에 불과하다는 해석을 내리고있다.
실상 일본과 북괴간에는 일·조 우호무역협회를 통한 민간 「레벨」의 교역은 그동안에도 계속되었고 그 수준이 5천만 「달러」선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므로 그러한 성격의 교역량을 10배로 늘린다는 합의는 별것이 아니다.
문제는 통상대표부의 설치 등을 규정한 이 합의서가 언젠가 상황의 변동에 따라 일본이 북괴의 「플리티컬·엔티티」(정치적 실체)를 인정하고 따라서 두개의 한국론을 현실화하게되는 우려할 사태의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 있다.
일본내부에는 두개의 한국을 인정해야한다는 일부 여론과 정치적 세력에 따라서는 이것을 하나의 정책으로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 북괴의 일본을 발판으로 한 국제진출책동, 중공진출바람이 불어넣는 영향 등이 복합되어 「두개의 한국론」이 점증하고 있고 이번의 무역확대합의서 조인이란 현대로 터져 나온 것이라고 보면 이 문제는 두고두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에서 일본정부의 합의서 승인을 막고 그 실현을 저지함으로써 「사실행위」가 「법적 정치적 행위」로 발전하는 것을 봉쇄하고 따라서 두개의 한국론의 조짐을 미연에 뽑아 버리는데 역점을 두고 일본정부·정계 및 재계지도자들에 대한 교섭을 전개했다고 김용식 외무장관이나 이호 주일대사는 『일본정부는 이 합의서 내용을 승인한바 없을뿐더러 전환하겠다』는 확약을 했다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지난날 자유중국에 보냈던 것 같은 각서보장도 아닌 말의 보장을 얼마만큼 믿어야 할지엔 문제가 있다.
어떻든 일본정부가 어떠한 지원이나 보증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견지하는 한이 합의서는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하고 따라서 일·북괴간의 공식적인 통상관계 개선이라는 목전의 위험은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정부의 진의라 할까 대 북괴 교역의 경제적 이익 내지 정치적 효과에 대한 그들의 정책방향이 어느 쪽으로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지 않은채 감추어져 있는데다가 두개의 한국론을 둘러싼 일본내의 분위기가 어느 때 건 돌파구를 찾아 분출할 수 있는 상황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문제는 서장일 뿐이지 결코 종결이 될 수 없다.<운용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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