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북괴간의 각서무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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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평양을 방문중인 소위 일·조 우호촉진의원연맹 대표단과 북괴 국제무역 촉진위원회 사이에 유효기간 5년의 『일·북괴 무역확대에 관한 합의서』가 마련되어 23일 평양에서 조인이 끝났다 한다.
동경으로부터의 보도에 의하면 이 합의서의 골자는 ①일·북괴간 무역을 해마다 확대해서 5년후인 1976년에는 현재의 약7∼8배 규모인 약4억∼5억2천만불로 한다 ②합의서에 따라서 각각 상대방 수도에 무역대표부를 설치키로 한다 ③동 대표부의 명칭·인원·활동에 관한 모든 문제는 쌍방이 각기 정부로부터 승인을 얻어 동의키로 하고 ④일측의 수입품목은 공작기계·공업기구·선철·합금강·비철금속·철광석·무연탄 및 기타 등이고, 북괴의 수입품목은 제초제「플랜트」·자동차「플랜트」·「필름·플랜트」·석유정제「플랜트」·화학「플랜트」·전자계산기공장·항만설비·유조선·강재·직물·자동차·「베어링」등으로 한다는 것으로 돼 있다.
상기 일본·북괴간 무역확대에 관한 합의의 성립은 일본·북괴가 비록 공식적으로 국교 관계를 맺고 있지 않지만 정상적인 국교를 맺고있는 나라들 사이와 다름없이 무역을 확대하고 각기 정부 인정하의 전면적인 통상을 하겠다는 것이므로, 일·북괴 관계 사상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본은「아시아」정세의 일대 변동기에 처해서「경제적 동물」로서 최대한으로 그들의 국익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에서 북괴와의 대규모 무역 확대를 원하고 있는데, 북괴 역시 대서방 해빙 외교의 일환으로서 무역·통상면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를 크게 개선코자 하는데 양자의 이해 관계가 일치하고 있는 탓으로 상기 합의가 성립을 보게 된 것이다.
일본이 미·중공 화해·접근의 경향에 편승하여『남·북한관계의 현실화』를 원하고, 그 첫 단계 조처로서 북괴와의 무역 통상을 대규모로 확대하겠다고 하는 것은 현하 격동하고 있는 국제정세 및 이에 순응키 위한 일본정계의 복잡·미묘한 움직임으로 보아 전적으로 이해치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한·일 조약을 맺고 또 이 조약에 따라서 한국과 우호 친선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데, 대 북괴 접근 정책이나 이 『남·북한관계 현실화 정책』은 바로 한·일조약과 동조약 발효후 성립된 한·일간의 우호·협력 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친다는 것을 고의적으로 무시코자 한다는데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정부는 ①통상 대표부의 설치 운운은 한·일 기본 조약을 해치는 근본문제이며 ②무역 형태의 변경, 무역량의 확대 등은 결과적으로 일본 수출입 은행의 개입 등으로, 민간「베이스」로 진행되고 있던 현재까지의 일·북괴 거래와는 전적으로 질을 달리하게 된다고 분석하고, 일본 정부에 대해 엄중한 항의를 하는 한편 사태의 진전에 따른 대응책을 검토하고있다.
일·북괴간 무역의 대규모 확대는 국제적인 해빙「무드」를 외면하고 호전주의 자세를 굳히고 있는 북괴를 고립시켜 동북아 일대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한국 정부의 기본 정책에 대한 정면 도전인 동시에 일본이 북괴에 수출키로 예정하고 있는 품목들이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시피 북괴의 전력 증강에 큰 도움을 줄 것이므로 한국의 국익을 크게 해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만약에 일본이 한국의 안보나 국제적인 지위 문제 등에 관해 정당한 관심을 갖는 것이라면 대 북괴 무역의 양적 확대와 질적 전환은 심히 부당한 것임을 자인하고도 남음이 있을 줄로 안다.
일본은 목전의 이익에 현혹되어 한국의 안보와 지위를 해치게되는 이기적인 행동을 자행하여 궁극적으로는 일본 자신도 해를 입지 않도록 심사 숙고로 대외 정책의 기본 방향을 책정·실천함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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