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가 산업 운명 좌우하는 시대 … 한국은 아직 HW 신화에 집착”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8호 04면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를 만든 마크 앤드리슨은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소프트웨어(SW)가 전 세계를 ‘잡아먹고’ 있다”고 선언했다. 정보기술(IT) 분야뿐 아니라 자동차·교육·의료·국방 같은 다른 영역에서도 SW 기술이 기업과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상황을 지적한 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세계의 흐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지적하는 이가 많다. 고건(65·사진) 전 전주대 총장은 “정부가 나서서 인력을 포함한 SW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 말한다. 고 전 총장은 서울대 계산통계학과와 컴퓨터공학부 교수를 거쳐 2년간 전주대 총장을 역임한 뒤 정년 퇴임한 SW 전문가다. 이달 중에 창립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재단의 이사장을 맡을 예정인 그에게 SW 산업 정책 방향을 물었다.

SW전문가 고건 전 전주대 총장

-SW 산업의 중요성은.
“애플과 노키아의 운명은 SW에서 갈렸다. 잘하면 좋은 게 아니라 못하면 죽는 게 SW다. 정보통신은 물론이고 기계·자동차·화학 등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막론하고 SW 의존도가 급속히 커지고 있다. SW가 다른 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세상이 됐다. 우리는 아직도 하드웨어를 만드는 전통 제조업의 신화에 눈이 가려 있다.”

-왜 그런 중요한 분야에서 인력난을 겪나.
“당장 한창 일하며 생산성을 발휘해야 할 SW 전문가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보라. 경기 변화에 가장 취약하고 능력에 합당한 대우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보니 우수한 학생의 기피현상이 더 심해진다.”

-정책의 허점은 어디에 있나.
“장기적인 비전이 없어 보인다. SW 산업에 인력이 부족하다니까 당장 몇 년 안에 수만 명의 인력을 공급하겠다는 식이다. 그렇게 쉽게 전문인력이 만들어질 수 있나. 당장 대학·대학원 정원이 줄고 현장에서는 고통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걸 정상적으로 만들지 않고 짧은 기간에 성과를 보려 하니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다.”

-왜 그런 상황이 이어지나.
“SW는 아직도 발전 단계라 기술 변화가 심하다. 국경이 의미 없기 때문에 전 세계적 경쟁에 내몰려 있다. 어려운 분야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인 연구와 여기에 바탕을 둔 정책이 꾸준히 나오고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교육 과정부터 인력 양성, 산업 구조까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바꿔 나가야 한다.”

-가장 시급한 조치는 뭔가.
“장기적인 SW 인력 양성을 위해 교육과정을 바꾸는 걸 미래창조과학부나 SW 학자들이 할 수 없다. 고질적인 시스템통합(SI) 업계의 하청-재하청 구조를 바꾼다거나 SW를 제값 주고 사서 써야 한다는 국민 의식 개선도 한 부서에서 가능한 게 아니다. 이런 범정부적 과제를 추진하려면 부처 간 벽을 넘어서는 힘 있는 기관이 한시적으로라도 필요하다. 미국은 IT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자 1997년부터 2005년까지 대통령 직속의 정보기술자문위원회(PITAC)를 운영하며 IT 진흥을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둔 바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