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과 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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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거리에 비친 우리 나라의 건물의 유리창은 대부분이 더럽다. 고가도로가 생긴 후 지상2층 이상의 건물의 창이 잘 눈에 띄게된다. 창의 본래의 목적인 채광과 통풍은 아무 구실도 못하고 음산하고 너저분한 실내모습만 체면 없이 불결하게 눈에 들어온다. 아무렇게나 뭉쳐 매달아 놓은 불결하고 초라한 「커튼」 혹은 무질서하게 안쓰는 물건을 창가에 쌓아놓은 모습이 지나가는 길손의 눈에 노출되고있다.
시청 앞에 멋진 건물이 섰다. 그 건물은 현대예술의 조형미와 「센스」를 다하여 짓는 듯이 오랜 시일 후에 준공되었다. 그러나 며칠 후 지나가는 차창에 그 건물의 유리창에는 노란 「커튼」이 귀찮다는 듯이 매듭지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신축된 건물에 안 어울리는 무조작한 관리인지 모처럼의 그 비싼 집과 아름답게 지은 건축의 노고에 대조되어 마음이 아프다.
이런 경향은 종로 네거리에서도 볼 수 있고 청계천 고가도로로 가면 무리한 한국의 생활구성이 솔직하게 표현되고 있다. 3·1「빌딩」의 검은 고층건물에 그 다색 「커튼」이 얼마나 아름답게 조화되어 서울시의 현대 감각을 약등시키고 있는지는 느끼는 사람에게 볼적마다 긍정을 준다.
해외여행시 큰 한길주변 건물의 창의 아름다움이 퍽 인상적이었다. 고색이 창연한 건물의 맑게 닦은 유리창에서 들여다보이는 실내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연이 얽혀있는 생활의 시정으로 이방인에게 비쳤다. 창에 비치는 여심! 예쁜 색과 깨끗한 「커튼」이 생활의 얼을 말하여주고 총총히 늘어서 있는 「아파트」창가에 올려놓은 꽃들은 타향의 나그네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를 더욱 그립게 하여 주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국민학교시절 담임선생님의 말씀이다.
즉 『우리들 속옷이나 건물의 유리창에 비친 실내나 다 그 주인의 사람됨을 나타낸다. 깨끗한 속옷이나 알뜰히 손질된 건물의 창가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여자의 마음과 같다』고 어린 우리들에게 누누이 말씀하셨다,
창의 모습에서 우리 나라 생활의 어느 현실을 그냥 보는 듯하다.
모방과 허세에서 커다란 건물은 지어 놓았지만 이것을 관리할 마음의 여유와 기초교양은 부족한 집주인의 모습을 폭로시키고 있다. 알찬 내부의 충실과 아기자기한 손질은 없고 거창하고 부담스러운 외부의 겉치레만 우선 마련하여 보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초라한 것을 가져도 알뜰하게 매만지고 다듬는 데서 아름답고 깔끔한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호화롭고 비싼 것이라도 그 사용법과 관리내용에 따라 초라한 것으로 퇴락시킬 수도 있다. 신축건물의 「슬럼」화는 거칠은 생활과 빈곤한 생활 교양에서 나오는 우리 사회의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 생활도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것을 아끼고 보다 낫게 손질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본다. 새것 혹은 화려한 것을 찾는 전시효과위주의 생활에서 빨리 탈피하여야 할 것 같다. [이기열<연세대교수·영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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