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반도 군사 긴장 관망만 할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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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동해의 공해상에서 있었던 미군 정찰기에 대한 북한 공군기의 위협시위,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한 군사적 해결 발언과 폭격기의 괌 이동배치 지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북측의 반발 등 한반도 내 군사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한국 내 외국투자가들이 긴장하고 외국 기업인들의 방한 취소 사태마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위기상황이 진행되는 데도 외국인들이 보기에 기이할 정도로 평안했던 우리 사회도 불안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사태 해결을 위해 북측이 집착하는 북.미간 양자대화와 미국이 선호하는 다자간 해법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어떠한 무력분쟁보다 대화가 낫다는 정부의 인식에 공감하면서 북한의 떼쓰기식 주장과 힘에 기초한 미국식 밀어붙이기 모두 한민족 공멸의 가능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우려를 표명해 왔다.

이제 사태가 이런 식으로 악화되고 있어 그 일차적 피해를 우리가 당하게 되었는 데도 정부의 대책다운 대책이 없는 것같이 보여 안타깝기 짝이 없다. 또 국민도 안보불감증에 빠져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못 느끼는 분위기가 답답하다.

한반도 내 무력충돌을 막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나종일(羅鍾一) 국가안보보좌관의 베이징(北京) 남북간 비밀회동은 남북간 접촉점의 유지라는 점에서 유용한 측면이 있다. 이 경우에도 반드시 한.미간에 사전 교감을 통한 대북접촉이 전제돼야 한다.

정부로서는 현 긴장의 구조적 성격과 북.미 양측의 입장 및 계산에 대한 치밀한 정보,그리고 이에 기초한 전략적 판단에 진력하여야 한다. 최근 사태의 악화는 우리에게 최악의 상황까지를 염두에 둔 대비를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 진전과 별도로 미국은 전쟁을 포함한 모든 대안을 상정하면서도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의 '전술적 공존'까지 고려 중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런 사태 진전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어 보인다.

또 우려하는 국민을 상대로 한 상황 설명도 없으며 미와 긴밀하게 조율한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공존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들을 수 없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원론적 대응은 이제 설 땅을 잃고 있다. 북한의 핵재처리 시설 재가동시 미국이 취할 조치에 대한 충분한 사전 조율이 시급하다.

또 모든 창구를 동원해 북측에 사태 발전의 결과에 대한 엄중성을 경고해야 한다. 사태 관망은 더 이상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