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빴던 국회정상화 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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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화당의 「10·2」파동으로 기능을 잃었던 국회는 22일 정상화되어 본회의를 열고 예결위를 구성해서 추경예산안 심의에 들어갔다.
국회가 개점휴업한 기간은 지난 7일부터 21일까지 15일간, 그 동안 여야는 자그마치 열두 차례나 총무회담을 열어 국회 정상화협상을 벌였고 여야 총무단의 별도 단독담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가뜩이나 공화당의 추예안 처리의 선행주장과 신민당의 의원신분문제 조사선행 주장으로 팽팽히 맞섰던 여야관계는 박대통령의 「10·15특명」으로 숨구멍조차 띄지 않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거의 같은 내용의 입씨름에 다소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한 것은 공화당 간부들이 일요일인 17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구태회 정책위 의장 집에서 모임을 가진 뒤였다.
공화당의 백남억 당의장, 구 정책위원장, 길전식 사무총장, 현오봉 원내총무와 김정렴 청와대 비서실장 등은 국회정상화를 포함한 시국문제를 논의, 다음 두 가지 대야협상의 기본전략을 세웠다.
그 하나는 학원문제가 웬만큼 수습될 때까지 본회의 재개를 늦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야당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공화당은 이때 얼마간 본회의를 열어주고 추경예산안 심의에 들어간다는 기본방침은 정했었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 18일 총무회담에서는 여야중진회담을 제안하는 등 연막전술을 쓰면서 협상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의 타결언질을 야당에 주었다는 것.
공화당 간부들은 학원문제에 대한 정부의 강경 조치를 미리부터 알고 이런 작전을 썼다는 얘기다. 백 당의장 등 간부들은 어느 기회에 박대통령으로부터 『계엄령은 절대 없을 것』이란 말을 듣고 계엄령보다는 낮은 단계인 위수령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하며 김종필 총리는 지난 11일 「이란」으로 떠나면서 공항에서 김유탁 의원 등에게 『내가 없는 동안 크게 달라질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함축성 있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의원연맹조사사건에 크게 자극되어 특조위 구성 결의안을 소속의원전원의 이름으로 제출하는 등 대여 강경 자세를 지속해온 신민당이 국회의 즉각 정상화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정부의 위수령 발동과 대학의 군인진입이 계기가 됐다.
「10·15지명」과 위수령 발동이 발표되자 신민당의 강경한 국회대책은 벽에 부딪쳤다.
위수령 발동 바로 다음날 김홍일 당수는 원내 대책위와 의원총회를 거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는 즉각 위수령을 해제하고 구속학생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는 특별성명을 내고 국회 본회의의 즉각 개회를 요구했다.
신민당이 이처럼 방향을 급선회시켜 국회의 무조건 정상화를 공회당 측에 제의하고 나선 것은 위수령 발동과 학원폐쇄사태가 의원연행조사사건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당 측이 총무회담에서 시간을 끌면서 학원사태의 안정을 기다리는 기미가 보이자 야당은 우선 내무·국방·문공위 등 관계상위만이라도 열자고 했다가 거부당하기도 했다.
국회만은 우선 정상화 시켜야겠다는 쪽으로 야당의 다수 의견이 기우는데 맞추어 박대통령의 추예안 처리 촉구 공한이 백두진 국회의장에게 전달되었다.
박대통령의 공한을 두고 신민당 안에서는 처음 『행정부가 입법부에 간섭하는 인상이 있다』는 말도 있었으나 즉각 국회정상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아 그냥 넘어갔다.
박대통령의 대 국회 공한은 국회가 대 정부 질문만을 벌이던 9월말께 이미 구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구상을 눈치챈 당시의 김재순 원내총무가 『대 정부질문이 끝나면 곧 추경예산안을 처리토록 하겠다』고 보고해서 일시 보류되었다고 한다.
이 공한은 특히 추경예산 중 13억 원의 수재복구비와 추위가 일찍 오는 일선지역에 쓰여질 56억원의 국방비가 시급해서 보낸 것이라는 뒷 얘기다.
여야 총무단은 대통령 공한이 전달되던 날 늦게까지 절충을 벌여 타결 점을 찾았고 이 절충안은 다음날 「마라톤」협상을 마무리 지은 후 발표되었다.
신민당은 앞으로 21일 총무회담에서 합의한대로 국회를 이끌어갈 방침이지만 알맹이 있는 대 정부공세를 펴기 위해 애를 쓰고있다.
우선 학원사태와 위수령, 그리고 의원연맹조사 등에 관한 대 정부질의에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 의원과 양일동 서범석 의원 등 중진들을 내세우기로 한 것은 이러한 전략에 따른 것이다.
김재광 총무는 전례 없이 「대 정부 질의대책」이란 책자를 김영삼 박한상 이택수 의원의 자문을 얻어 미리 작성, 의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우선 대 정부질의의 서막으로 정부측 보고를 듣기로 예정했던 22일 국회본회의에서 김수한 김상현 송원영 의원이 규칙발언을 얻어 의원조사 연행사건을 따지고 넘어간 것도 정부의 최근사태 해명을 깔아보려는 전략의 하나. <조남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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