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철새, 마중 나갈 때가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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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에서 촬영한 흑두루미 [김신환 제공]

철마다 새를 보러 다니는 이를 알고 있다. 한겨울에 철새 사진을 찍을 때면 그는 초코파이 서너 개를 가루 내어 갖고 가곤 했다. 800㎜ 렌즈 탓에 대포처럼 길어진 카메라를 받쳐 들고 마른 수풀에 바짝 엎드려 멀찍이 새 무리를 바라보며 그는 바스러진 과자를 조금씩 집어 먹었다. 철새의 멋진 비상을 포착하는 순간만 기다리며…. 지금도 철새를 찾아 서해안 어디쯤을 찾아 헤맬 어느 사진 기자 이야기다.

겨울 들머리. 어김없이 철새는 날아왔다. 매년 겨울나기를 위해 한반도로 날아드는 철새는 150여 종. 철새들은 지난 기억을 온몸으로 되살려 머나먼 북쪽의 들판을 건너, 우리네 논밭에 내려앉았다. 황량한 계절의 추위를 견뎌내며,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철새는 피난처를 고르는 데도 까다롭다. 그래서 철새가 찾는다는 건 그 나라가 아직 살 만한 땅이라는 증명이기도 하다. 철새의 수가 환경 수준의 지표로 꼽히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체면을 살려 주는 건 가창오리다. 오리과의 이 새는 전 세계에 80여 만 마리에 불과한 국제보호종인데, 그 중 약 95%가 해마다 한반도 서해 갯벌에서 겨울을 보낸다. 우리나라 겨울 철새 수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게 바로 가창오리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지난 겨울에도 우리나라를 찾은 겨울철새 중 가장 많은 종이 가창오리였다. 총 209종 113만여 마리 철새 중 가창오리가 무려 34만여마리였다.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일제히 비상하는 것을 ‘가창오리의 군무’라 한다. 이 군무를 볼 수 있는 건 한반도가 유일하다. 한반도에서 겨울을 나고 번식기가 찾아오면 가창오리는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생존을 향한 가창오리의 부단한 날갯짓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하나, 철새를 보는 일은 까다롭고 복잡하다.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숨소리마저 줄여야 한다. 오랫동안 기다리며 자연과 한 몸이 돼야 비로소 철새의 천진한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한파가 닥치기 전, 11월이 겨울 철새 탐조 제철로 꼽히는 까닭이다. 겨울 진객을 맞으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전국 탐조 명소를 샅샅이 살폈다.

글=나원정·홍지연 기자
사진=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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