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권파 우립 그대로-공화당 요직개편의 성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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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 8일께 있으리라던 공화당 개편이 9일에야 이루어졌다.
그 동안 백남억 당의장은 청와대를 여러 차례 출입했고 당 간부들과도 많은 접촉을 가졌다.
요직개편의 특징은 백 의장이 말했듯이 상향식인 점이며 그런 의미에서 당의장의 권한과 책임은 커졌다고 보아야 한다. 새 진용의 얼굴로 봐서 당의장의 권한 강화는 쉽게 짐작이 간다.
박 총재는 8일 하오 백 의장이 당 간부들과 협의를 거쳐 제출한 인선명단을 검토하고 9일 최종 매듭단계에서 김종필 부총재와 정일권 상임고문도 불러 의견을 물었으나 당의장의 건의를 거의 손질하지 않은 것 같다.
요직개편 과정에서 몇몇 주요당직을 놓고 당내계파간에 치열한 경합이 있었던 만큼, 이 과정에서 보여준 실권파와 반 실권파의 대립을 어떻게 조정 내지는 해소하느냐는 문제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특히 야당과의 관계까지 고려할 때 공화당의 당내총화에의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개각과 당 개편과정을 통해 끌고 나가는 자세에서 밀어주는 자세로 바뀐 듯한 박대통령의 영도방식의 변모로 당과 내각은 주체적으로 앞길을 개척해야할 주체적인 책임을 지게된 만큼 더욱 그렇다.
파벌이 인정되지 않고 있으면서도 공화당의 내부세력은 두 갈래로 정돈되어 왔다. 백남억 길재호 김성곤 김진만씨를 중심으로 한 실권파와 구 주류 및 강경파가 연합한 반 실권파다.
이번 개편은 원내까지는 몰라도 당 요직은 실권파의 체제가 그대로 유지됐다고 봐야 한다.
당의장·저액위 의장·사무총장·중앙위의장·재정위원장이 모두 실권파이기 때문이다.
40여의 개편대상 간부직 중 가장 중요한 자리는 정책위의장·사무총장·원내의장·국회부의장.
실권파는 각각 길재호 길전식 김진만씨를 희망한 반면 반 실권파는 이동원 이병희 장경순씨를 밀었다. 그밖에 당무위원과 국회 당임 위원장 자리를 놓고도 보이지 않은 거리가 있었다.
당의장은 포함한 12명의 당무회의 구성은 대체로 실권파7, 반 실권파 4의 비율로 분석되고 있다.
원내는 상임위원장이 결정돼야 알 일이지만 부의장·원내총무의 내정인사로 보아 일단 반 실권파에 이니셔티브가 주어졌는데 이는 내각과의 보조를 고려한 인사처리인 것 같다.
길재호씨는 당초 사무총장 뿐 아니라 모든 당직을 사양하겠다는 뜻을 당 간부들에게 표시했다. 이는 선거운영에 관한 당내 불만에 대한 인책의 뜻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백 의장은 그의 재기용(사무총장이나 정책위원장)을 강력히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의장은 선거운영의 책임이라면 그것은 자신이 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길씨의 고사를 만류했는데 그 보다도 길씨의 당내 비중과 영향력을 고려하여 그가 뒷전에 처져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인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던 사무총장엔 당초 이병희 의원이 가장 유력했으나 백 의장이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8년간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장경순씨의 다음 포스트 때문에 중앙위의장을 당의장 다음으로 격을 높여 그를 천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장씨는 국회부의장으로 재 선출키로 내정해서, 당직서열의 조정은 백지화했다.
백 의장이 요직인선의 원칙으로 삼은 것은 시니리오·시스팀(다선우특 체제). 공화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 3선 의원이 됐고, 야당이 상대적으로 강해진 8대 국회를 원만히 헤쳐 나가려면 경험 있는 다선 의원을 우선적으로 당 간부에 기용해야 한다는 것.
이 원칙을 충실히 따라야 당의 총화를 이룰 수 있고, 그러려면 종래 인사에 고려했던 지역 안배나 계보에는 신경을 쓰지 말자는게 그의 주장이다.
어느 사회고 계서는 있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계서를 지탱해주는 원칙은 있어야 하지만 시니오리티·시스팀은 공화당에서 비교적 생소한 얘기다.
생소하다는 점 때문에 이 원칙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당내에는 상당히 있다. 시니오리티란 익숙치 못한 원칙을 새삼스레 확립하려는 것이 실권파의 기득 우위를 지속하려는 게 아니냐는 경계심이다.
실권세력에 다선 의원이 많고 당내의 인선협의가 계파간에 개방적이기 보다 폐쇄성을 띠었다는 사실이 이런 경계심의 배경을 이루는 것 같다.<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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