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여성 밤길 만들자" 골목길에 CCTV·LED 설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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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경찰 위원회 위원들이 방범 순찰에 앞서 천안성정지구대 순찰차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소용이 없음을 의미한다. 범죄도 마찬가지다. 범죄가 발생한 후 범인을 잡아도 피해 당사자가 겪는 고통과 아픔까지 보상받지는 못한다.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23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따라서 범죄는 예방이 최우선이다. 범죄로부터 안전한 천안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팔을 걷어 붙였다.

시민참여형 범죄예방 프로젝트 추진

“기차시간이 늦어 저녁시간에 도착하는 날이면 어김 없이 택시를 탔습니다. 집까지 걸어 10분도 걸리지 곳인데 그곳까지 걸어 가려고 해도 길도 어둡고 사람도 다니지 않아 도무지 엄두가 않더라고요” 서울로 직장을 다니는 김지혜(31·봉명동)씨는 퇴근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는 날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일찍 회사를 나서면 걸어서 집을 갈 수 있지만 퇴근이 한 두 시간이라도 늦어지면 택시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10일 오후 9시 천안 서부역사 진입로. 200m에 불과한 이 거리는 늦은 오후나 저녁시간이면 사람 한 명 다니지 않는 ‘어둠의 길’이 된다. 하천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쪽방촌과 주변에 여관이 즐비해 있다. 이 일대는 외국인 노동자와 일용직 근로자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늘 동네에는 사건이 빈번히 발생한다는 소문까지 무성했다. 이 일대는 오래 전부터 시민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주변 식당마저 일찍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은 곳이었다.

이처럼 늦은 밤은 물론 저녁시간만 되도 개미 한 마리 다니지 않는 음산한 이 거리가 환한 조명과 최단 방범시스템을 갖춘 안전하고 쾌적한 거리로 탈바꿈 했다. 천안서북경찰서 시민경찰위원회가 주도적으로 나서 경찰서·지자체·대학 등 민·관·학이 연계한 시민참여형 범죄예방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최근 시민경찰위원회는 나이트클럽이 있고 여관이나 월세방에 거주하는 일용직 근로자와 노숙자들이 밀집해 있어 기차를 이용하는 여성들이 불안해한다는 지적에 따라 안전한 거리로 만들기 위한 첫 지점으로 서부역 진입로를 선정했다. 대학의 재능기부와 구청의 행정적 지원으로 진입로 구간이 선진국에서 활용 중인 셉테드(CPTED)를 적용한 여성이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는 전국 최초의 ‘여성안심 귀갓길’로 변모했다. 범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환경으로 설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1 포돌이 마크가 새겨진 LED가로등.
2 지능형 CCTV.
3 여성안심 귀가길 조성사업이 완료된 모습.

순찰은 물론 각종 봉사활동도 펼쳐

시민경찰위원회가 공을 들여 교체한 건 바로 가로등과 CCTV. 지난 8월 현장 실사를 다녀온 후 시민경찰위원으로 활동하는 함남수 위원이 가로등을 제작해 기증키로 하면서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았다. 함 위원은 가로등 설계 및 설치 전문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함 위원의 도움으로 위원회는 일반 가로등과는 다른 친환경 LED조명을 곳곳에 설치했다. 친환경 LED조명은 전국 최초로 등주 암 로고를 강화유리에 입체적으로 조각해 기존 아크릴에 필름지를 붙이는 방법에 비해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여기에 푸른색 LED로 경찰 마스코트인 ‘포돌이’ 로고가 보이도록 해 경찰이 거리를 밝히는 ‘안심 가로등’ 이미지를 연출했다.

주변이 밝아진 것 말고도 CCTV와 비상벨도 설치했다. 이번에는 시민경찰위원회 노종관 위원장이 최첨단 인공지능형 CCTV와 비상벨(안심벨)을 기증하기로 했다. 1000만원 상당의 CCTV와 안심벨은 천안시 통합관제센터와 연결해 실시간 감시가 가능하도록 했다.

기존의 CCTV는 40만 화소 고정식(단방향)이어서 범죄발생 시 식별이 어려웠다. 이에 반해 노 위원장이 설치한 CCTV는 200만 화소의 고화질 최첨단 지능형이다. 움직이는 물체를 자동으로 추적해 영상을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시민안전 종합대책 일환으로 인공지능형 CCTV를 설치하고 있다. 또 CCTV 아래에는 비상벨을 설치해 위급상황 발생 시 현장에서도 벨이 울리고 관제센터와 연결돼 경찰이 즉각 출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이밖에 서북구청은 가로등 설치 비용을 지원했고 백석대학교에서는 자원봉사자를 통해 주변 담장에 벽화를 그리는 환경개선사업으로 안심한 거리 조성에 힘을 보탰다. 노종관 위원장은 “시민경찰위원회는 평범한 직장인이나 사업장이 있는 사람들로 매달 범죄 취약지구 순찰은 물론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며 “시민경찰위원회가 범죄로부터 안전한 천안을 만들기 위해 모범을 보여주고 앞으로도 범죄예방활동을 통해 시민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시민경찰위원(60여 명)들은 경찰과 협력치안체계를 구축, 안전하고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경찰학교과정을 수료한 시민들로 2001년 1기 31명을 시작으로 2013년 7월 현재 9기 334명을 배출했다.

글·사진=강태우 기자

◆셉테드(CPTED)=도시환경을 범죄에 방어적인 디자인으로 설계해 범죄를 예방한다는 의미로 1971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했고 지금은 영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에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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