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일, 노는 게 창조" 판소리 '떼창'한 회장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AQ 경영을 강조하는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이 한복에 부채를 든 차림으로 판소리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크라운·해태]

흰 저고리를 입은 초로(初老)의 신사가 커다란 부채를 쭉 펼치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도창(導唱·판소리를 이끄는 창)한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이어 무대에 오와 열을 맞춰 앉은 소리꾼 100명이 일제히 북을 두드려 박자를 맞추며 “봄은 찾아∼ 왔건마는∼”하고 받는다.

 지난 3월 세계 기록인증기관 ‘월드 레코드 아카데미’로부터 ‘세계 최다 인원 동시 판소리 공연’으로 인정받은 이 장면은 현재 유튜브에서 ‘판소리 떼창’이라는 이름으로 1만 회 넘게 조회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노신사는 바로 크라운·해태 제과 윤영달(68) 회장이다.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른 소리꾼들은 이 회사의 임직원들이다.

 예술과 회사 운영을 접목한 윤 회장의 ‘AQ(Artistic Quotient·예술가적 지수) 경영’이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과거 기업이 물건을 만들고 판매하는 ‘팩토리’ 개념이었다면 21세기 기업은 단순히 물건만 팔아선 생존할 수 없다.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기호, 즉 문화 코드를 읽어 이를 제품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Q(감성지수)가 단순히 예술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의미라면, AQ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창조적인 능력을 통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설명이다. 과자 한 봉지에도 AQ를 바탕으로 한 문화를 담지 않으면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크라운·해태 제과 임직원들은 대부분 후천적으로 ‘반(半)예술가’가 됐다. 뮤지컬부터 연극, 시 낭송, 조각까지 AQ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일과 중에 틈틈이 창 연습을 하고 주말에는 공병과 나뭇가지, 폐철근, 돌 등을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들고 전시한다. 2004년 도입한 ‘AQ 모닝아카데미’는 벌써 200회를 돌파했다. 예술 활동을 강조하는 윤 회장에게 하루는 한 임원이 이렇게 물었다. “회장님, 일은 언제 합니까.” 윤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일 하지 말라니까. 예술이 일이야, 노는 게 창조야.”

 이러한 AQ 활동은 실제 경영 실적으로 돌아온다. 크라운·해태 직원들은 과자 박스나 포장지를 이용해 대형 얼룩말·독수리·코뿔소 같은 작품을 만든다. 고객들이 이 작품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 반응이 뜨겁자 유통업체는 이를 매장 중심부에 진열한다. 작품 아래에 놓인 크라운·해태 과자의 매출은 이전에 비해 15% 이상 늘어난다. 대형 할인매장에서 좋은 위치에 진열되기 위해 벌어지는 경쟁을 예술로 해결한 것이다.

 AQ는 영업 일선에서도 빛을 발한다. 크라운·해태 영업사원들은 겨울철 수퍼마켓 앞에 쌓인 눈을 이용해 호랑이·용 같은 눈 조각품을 만들어준다. 제설작업으로 흉물스럽게 쌓인 눈을 작품으로 둔갑시켜주면 점주들은 무척 고마워한다. 영업맨과 점주의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자연스레 제품 진열 순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밖에 모차르트·바흐 등의 고전음악을 들려주며 만든 크래커, 포장 박스마다 명화엽서를 넣은 ‘오예스’, 초콜릿으로 곡선을 그려 넣은 쿠크다스 등은 AQ를 제품 생산에 활용한 사례다.

 윤 회장은 최근 경기도 양주시 송추 일대에 아트밸리를 꾸미고 있다. 러브호텔 10여 채를 구입해 조각가들의 작업 공간, 국악 명인들의 연습 공간으로 개조했다. 아트밸리가 활성화되고 가족 단위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침체된 지역경제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윤 회장은 이를 “기업이 예술을 통해 지역에 봉사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크라운·해태 임직원들은 오는 12∼13일 또 한번 ‘떼창’을 선보인다. 이 회사가 국악 대중화를 위해 9년 전 창설한 퓨전국악공연 ‘창신제’에서다. 사철가와 심청가 두 작품에 각각 100명씩 200명의 임직원이 소리꾼으로 나선다. 이번에는 윤석빈 크라운제과 대표와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가 각각 도창을 맡았다. 윤 회장은 “젊은 경영인들이 국악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AQ 경영에 나설 수 있도록 양보했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