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예산 낭비 부르는 정부 주도의 일자리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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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안 가운데 복지 분야와 함께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지출항목이 고용 분야다. 올해보다 8422억원(7.7%) 늘어난 11조8042억원이나 책정됐다. 현재 64.6%인 고용률을 1% 높이기 위해 나랏돈을 퍼붓겠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국정목표 가운데 유일한 수치 목표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이처럼 정부 주도로 예산을 투입해 늘리는 일자리는 대체로 고용의 질(質)이 떨어지는 데다 안정성도 낮아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사정이 이런 데도 무리하게 정부예산으로 고용률을 높이려 하다간 허드레 일자리를 만드느라 재정 적자만 늘릴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복지예산을 대느라 허리가 휠 판인데 일자리마저 국민세금으로 충당할 경우 재정이 감당하기 어려워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연히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정부가 고용률을 높이겠다며 국민세금을 퍼부어 인위적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앞뒤가 바뀐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고용률 70% 달성에 매달리다 보니 각 부처가 다투어 유사한 공공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경쟁하는가 하면, 효과가 의심스러운 일자리 사업에 예산을 배정하는 난맥상이 연출된다. 정년이 연장돼 실효성이 의심스러워진 임금피크제 지원금액을 높인다거나, 국제적으로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되는 시간제 일자리 창출에 정부예산을 대거 투입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부 주도의 인위적인 일자리 만들기가 예산 낭비와 비효율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7일 “고용률 70%는 정부 노력만으로 안 된다”고 했다. 인위적인 고용창출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고용정책의 중점을 고용률 향상에 두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고용률 70%가 지상 목표가 되어 무리하게 예산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곤란하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