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총리 네티즌 반발에 뒤집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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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高建) 총리인준안은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으나 개봉을 눈앞에 둔 새 정부 조각(組閣)작업이 막바지 진통을 겪었다.

발표가 지연되면서 정부부처.시민단체.민주당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곳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 원인이다.

몇몇 주요 부처 인선은 내정 단계에서 막판에 인선이 뒤바뀌는 상황도 발생했다.

교육부총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오명(吳明)아주대 총장이 교육부장관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실련.흥사단.전교조.민교협 등이 포함된 21개 시민.교육단체 연합체인 '교육개혁연대'는 2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제동을 걸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를 지원했던 반개혁적 인사를 교육개혁을 지휘할 수장으로 내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吳씨는 盧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철저한 반성을 요구했던 특권층에 속하는 인물로, 盧대통령과는 전혀 코드가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학벌사회, 입시지옥, 부패사학 계속" "노짱, 국민 누가 이기나 해보자" "장고 끝에 악수, 정말 맞는 말이다" 등의 글이 쇄도했다.

결국 이날 오후 吳총장은 성명을 내고 "새 정부에서 본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해 수락하려 했는데 시민단체 등이 반발하고 있는 데다 교육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 교육개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고사하기로 했다"고 입각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헌정 사상 장관직 제의를 거절한 경우는 있었지만, 장관에 내정됐다가 인터넷 등에 의한 여론조성 때문에 자진 포기한 것은 처음이다.

이후 기존의 경합자인 전성은(全聖恩) 거창 샛별중 교장, 윤덕홍(尹德弘)대구대 총장은 물론 민주당 이재정(李在禎)의원까지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등 교육부총리 인선이 가장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노동부는 노동단체간의 문제로 장관 얼굴이 달라졌다.

당초 파격적 발탁 카드로 꼽혔던 민노총 부위원장 출신의 김영대(金榮大) 개혁국민당 사무총장 대신 김금수(金錦守)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쪽으로 가닥이 잡혀갔다.

金총장에 대해선 한국노총 쪽의 반대가 컸지만 金이사장은 양대 노총에서 고루 신망을 얻고 있다는 점이 배경이라고 盧대통령 핵심 측근이 전했다.

국방부장관도 내정 단계에서 뒤집혔다. 조영길(曺永吉)전 합참의장 대신 이남신(李南信)현 합참의장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李의장은 김대중 정권에서 기무사령관.3군사령관.합참의장 등 요직을 거친 바 있다.

국방 관계자들은 "군 조직의 안정성을 존중하되 인사요인을 유발시켜 군 주요 라인을 장악하려는 포석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전직(前職) 인사를 기용하면 임기가 남아 있는 군 장성들을 교체하는 데 부담이 따르지만 현직 인사를 승진시키면 자연스럽게 인사 요인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여성 및 지역 안배도 막바지 배려 사항이었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민주당 김화중(金花中)의원의 입각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민단체가 반발했으나, 盧대통령 측은 金의원을 뺄 경우 여성장관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대구.경북(TK) 고려 차원에서 거론돼온 권기홍(權奇弘) 영남대 교수는 착지(着地)를 못하고 마지막까지 산자.복지.환경부 등의 여러 부처에 동시에 거명되기도 했다.

정보통신부 장관 유력 후보 중 한명이었던 안문석 고려대 교수는 인선이 지연되면서 교내 부총장을 맡으면서 고사했다. 盧대통령 측근 인사는 "인선 기간이 너무 길다보니 부작용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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