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산층 기부 가로막는 세제개편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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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의 기부문화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흔들리고 있다. 특히 사회의 허리인 중산층의 기부금액과 기부 참여율이 뚝 떨어졌다. 아름다운재단에 따르면 소득별 10개 그룹(1분위 최저소득층, 10분위는 최고소득층) 가운데 6분위의 연소득 대비 기부금 비율이 뒷걸음질했다. 우리 사회의 기부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에 의존하는 기형적 구도로 가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중산층의 기부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불황과 부동산 침체로 삶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와 사교육비 부담도 커졌다. 하지만 이들 중산층이 다시 기부의 중심에 서지 않으면 사회적 안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내년부터 기부금의 세금 감면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는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부족한 세수를 보충하겠다는 것이다. 편법 기부를 통한 탈세를 막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정부 측 방안대로 가면 연소득 6000만원 이상의 기부자들은 세금 감면혜택이 9~23%나 줄어들게 된다. 가뜩이나 중산층의 기부가 줄어드는 판에 이제 갓 싹을 틔우기 시작한 ‘나눔문화’가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세제혜택을 늘려 기부문화를 북돋우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흐름이다.

 물론 세금납부가 최고의 기부행위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부문화는 경제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에 따르면 한국의 기부지수는 전 세계에서 45위다. 기부는 한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라 할 수 있다. 기부는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복지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중요한 장치다. 따라서 한국은 앞으로 상당 기간 세제혜택을 마중물 삼아 나눔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그런데도 세제개편안이 강행되면 중산층의 기부는 후퇴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좋은 일을 하고도 세금 폭탄을 맞는 듯한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되면 누가 선뜻 기부에 나서겠는가. 정부가 기부문화에는 관심이 없고, 복지 공약에 목을 맨 채 세수 확보에만 열을 올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