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세돌, 반 집 이긴 뒤 만방으로 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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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2국>
○·구리 9단(1패) ●·이세돌 9단(1승)

제13보(164~174)=이세돌 9단이 흑▲로 한 눈을 만들었으나 다른 한 눈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프로라면 이 흑 대마가 죽었다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희망이 전혀 없는 100% 사망이지요. 하지만 이세돌은 무언가에 홀린 듯 바둑을 두어 나갑니다. 그의 시선은 지금이 아니라 저앞 쪽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던 어딘가에 고정된 듯합니다. 승부에 몰입하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손은 관성적으로 돌을 놓고 있지만 정신은 아주 먼 다른 곳으로 가 있는 경우 말입니다.

 구리 9단도 조용조용 대마의 함몰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마치 적장의 목을 쳐 주듯 예의를 다합니다. 수순은 아주 쉬워서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170에서 흑에게 ‘참고도’ 1로 잇는 수가 있어 보이지만 백2로 그만입니다. 173도 희한하죠. 살자는 수도 아니고 막으면 아무 수도 없지만 그냥 한번 나가봅니다. 174로 막자 이세돌 9단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판을 한번 훑어보더니 돌을 거뒀습니다. 만방이네요. 계가를 하면 100집이 넘을지도 모릅니다.

 1국에선 기적적으로 반 집 역전승을 거둔 이세돌 9단이지만 2국에선 대마가 잡히며 만방으로 졌습니다. 요즘엔 프로 바둑에도 가끔 방내기 룰이 차용되기도 하지만 그건 비공식 대회의 얘기이고 공식 대회에선 반 집이나 만방이나 똑같은 1승이지요. 이렇게 해서 결승전은 1대1이 됐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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