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 검은「베레」여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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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뛰어』「악마조교」(우리는 기합을 주는 조교들을 이렇게 불렀다.)의 외마디 명령이 떨어지자 나는 마지막 낙하를 위해 창공에 몸을 날렸다. 1초, 2초, 3초, 4초…마음속으로 계산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눈을 들어 주낙하산이 펴진 것을 확인한 다음 천천히 낙하지점을 향해 몸을 조종해 내렸다.
여자는 신체적인 조건대문에 활동에 한계가 있다는 기성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공수단 훈련과정에 자원, 이를 악물고 피나는 훈련을 거듭하기 4주간, 낙하할 때마다 나의 머리에는 저 멀리 낙하지점에서 가슴 죄며 기다리는 여군 처장님과 동료들의 모습이 스쳐갔다.
『여군들은 타자나 치고 비서직·사무직이나 맡을 수 있을 뿐』이라는 남자군인들의 진담이 섞인 농담을 들을 때마다 나는『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남자군인들과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나와 생각이 같은 동료 7명은 1개월전 공수특전단에 자원 입대, 남자군인들과 똑같은 훈련을 받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구보훈련, 모형문과정, 공중이동, 접지훈련, 모형탑 훈련, 낙하산 전복 및 회수, 낙하과정 등 생명에 대한 위험을 수반하는 어려운 훈련을 받으면서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여군창설 19년만에 최초로 시작한 이 훈련에서 부끄러운 자국을 남기면 안된다는 일념으로 참고 또 참았다.
특히 동료 이윤하 상병이 30회 뛰어 5번 합격해야 하는 모형탑 낙하훈련 과정에서 불합격, 퇴교 명령을 받았으나『죽어도 합격하겠다』고 울면서 호소, 85번이나 뛰어 합격했을 때 우리 8명은 이상병을 얼싸안고 한동안 울음을 떠뜨리기도 했다.
『8명의 처녀 검은「베레」』- 신문에 난 우리들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나와 나의 동료들은 우리들에게 지워진 국토방위의 임무를 다시한번 느꼈다.
『여군이 겪을 수 있는 제일 어려운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세상의 어려움도 넉넉히 헤쳐 살아갈 수 있는 훌륭한 신부감이 되겠다』고 나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서슴없이 대답했다.
박옥자<여군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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