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불, 민중연극 개척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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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프랑스」연극계는 기성극단에 반기를 들고 민중연극에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그 기수는 「가브리엘·가랑」. 그는 근년「파리」동북의 위성도시인 「오베르빌리에」시립극장 「라·코뮈느」를 추진하고있는 장본인이다.
그가 「파리」에서 관계해온 여러 연극 「그룹」을 벗어난 것은 1960년. 『「파리」극단의 상업주의적 타성은 오만한 계급의 관객을 상대할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연극은 여태까지 극장을 모르던 노동자와 서민이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여러 도시에 협력을 구한 결과 「오베르빌리에」에서 관심을 표해왔었다』고 그는 말하고있다.
「가랑」은 그 도시 천년을 맞아들여 연극교육을 시작했다. 모인 젊은이는 노동자 교사 학생 등 각층에 걸쳤고 또 연극의 개념조차 잘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그곳 시민이 극장에 가는 것은 가수나 놀이패의 공연이 있을 때 뿐 이며 첫 공연의 관객 중 3분의2이상이 연극 같은 걸 본 일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고장 젊은이들의 입을 통하여 내 뜻은 주민들에게 전달됐고 그래서 시민의 총의로 64년에 드디어 극장을 준공하고 연극제까지 베풀기에 이르렀다』고 그는 회고한다.
연극제에 관심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선전 「팸플리트」와 단막극 공개, 심지어 「세트」와 의상까지 상세히 소개함으로써 한층 효과를 거두었다.
그래서 첫 공연에 동원된 관객이 4천명. 이래서 연극에 한오리의 흥미조차 없던 노동자의 소도시는 갑자기 격렬한 힘을 얻어 그들 자신이 극장과 극단을 갖게 된 것이다.
「가랑」의 이러한 노력은 곧 「파리」에 전해져 그 같은 연극운동을 재촉하게 했다.「파리」의 동부 극장 (TEP), 서부극장(TOP), 또 「비르쥐프」시의 「로망·롤랑」극장, 「상·드니」시의 「필리프」극장, 그밖에 「사르트르빌」, 「낭테르」, 「방센」 등 여러 도시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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