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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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을 후학들은「주보따리」라고 불렀다. 물론 애교있게 부른 스승의별 명이다. 주선생은 한글의 암흑기에 등사판 한글교재를 보따리에 싸서 들고 다니며 학교를 전전했었다. 한글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분의 후학인 김윤경선생을 오늘의 후학들은「한결보따리」라고 불렀다.
「한결」은 김윤경씨의 호이다. 보따리는 아니었지만「한결」은 70평생을 두고 커다란 가방을 들고다녔다. 허리는 조금 굽었을망정 그분은 지치거나 피곤해 보이지않았다. 언제나 그런 표정에, 그런 발걸음에, 그런 음성으로 일상 생활을하고 계셨다.
그분의 커다란 가방은 두가지를 상징한다. 이순이 가깝도록 그분은 서재를 떠난적이 없다.학문에 대한 열정과 신념은 신앙의 경지와 다를바 없었다. 학자에게 그런 것이 신기한 일은아니다. 그러나 세파를 견디어내는 그의지엔 숙연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후학에 대한 마음가짐마저도 그렇다.
언젠가 제자가 선생에게 물었다.『선생님의 호는 어째서「한결」입니까?』이때 교수는 몹시 노한 눈초리로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언제, 내가 한결같지 않던가?』
김윤경선생의 일화이다.
그분이 객지 부산에서 작고하였다는 비보를 듣고 몇몇 그분의 친지들에게 묻었다. 그분의일화라도 듣고싶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약속이라도 한듯이『일화가 없는 것이 바로「한결」선생의 일화』라고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한결」은 평생에 짓궂은 농담한번 건네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담담하고, 강직하고, 곧고, 근엄하며, 순진하기 때문에-.
현세를 살기엔 어딘지 역겹고 어색하며, 바보스러운, 그런학자였던 것 같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때도 그는 심한 고문을 받은분 중의 한사람으로 꼽혔다. 도무지 곧은 대로만 진술을 했기때문이다.
세속인의 눈엔 오히려 역설적이던 한결선생은 바로 그「역설적인 교훈」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그분의 학자다움은 우리의 학해에선 더없이 아쉬운 교훈이며 경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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