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 퇴치전'엔 추위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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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전 8시 경북 영덕군 남정면 부경리 마을 앞 포구.방파제 주변에 갈매기들이 떼지어 날고 쪽빛 바다는 눈이 시릴 정도로 빛난다.평화로운 풍경 가운데 바다에 뛰어들 채비에 바쁜 5명의 해녀와 잠수부가 눈에 띈다.

이들은 준비가 끝나자 저마다 커다란 망태기를 하나씩 들고 바다로 뛰어든다.이들이 추운 겨울 바다에 뛰어든 것은 불가사리를 잡기 위해서다.

뭍사람에겐 호기심의 대상인 불가사리는 어민에겐 애물단지다.어민의 옥토(沃土)인 어장을 망치는 주범인 탓이다.불가사리는 다리가 잘려도 재생되는 등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천적이 없어 개체 수도 급격하게 늘어난다.정확한 연구결과는 없지만 엄청난 양의 패류를 잡아먹는 탓에 어민들에겐 원수 같은 존재다.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불가사리 잡이를 장려하기 위해 잡은 불가사리를 1㎏에 5백원에 사들이고 있다.

이날은 이 마을이 한달에 한번씩 치르는 불가사리와의 전쟁 날이었다.수심 15m까지 바닷속을 뒤지며 불가사리를 잡은 해녀와 잠수부가 뭍으로 올라온 것은 예정보다 두 시간 이른 오후 1시쯤이었다.

잠수모에 가려 손바닥 만큼도 드러나지 않은 얼굴이 온통 시퍼렇게 얼어 있다.온몸이 굳어 작은 몸짓조차도 힘들어 했다.

“아이고,말도 마소.더이상 못하겠다.바닷물이 얼음물이라 손발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니더…”
30년 가까이 물질을 했다는 해녀 권영자(56)씨는 정신마저 없다는 표정이다.물이 차다 못해 손과 발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권씨는 “손이 얼어 불가사리를 쥐기도 쉽지 않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그는 “바다밑 한 평 정도마다 10마리 이상의 불가사리가 널려 있다”며 “이렇게 잡아내기에 망정이지 그냥 두면 어장이 불가사리로 덮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망태기를 쏟자 길이가 5㎝ 정도 되는 별 불가사리부터 바다의 난폭꾼으로 불리는 30㎝가 넘는 아무르 불가사리(다리가 가늘고 긴 것)까지 형형색색의 불가사리가 무도기로 나온다.쏟아 놓은 불가사리들 사이로 빈 전복 껍질이나 소라 껍질도 여기저기서 보인다.

이날 잡아 올린 불가사리는 5백㎏ 정도로 1만마리가 넘는다.

이날 작전은 불가사리의 무게를 잰 뒤 군청 수매 트럭에 싣는 작업을 마친 오후 두시쯤에야 끝났다.

한 겨울에도 바닷가 마을은 어느 곳이든 불가사리를 잡고 있지만 부경 어촌계는 요즘 부쩍 불가사리 퇴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불가사리의 먹이인 전복과 성게·소라·고동 등이 이 마을 어촌계의 중요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부경어촌계가 지난해 전복·소라·고동을 팔아 올린 수입은 3천여만원.60여명이 어촌계원이 나눠 갖기 때문에 가구별로 따지면 액수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올해부터 사정이 달라졌다.지난해 20t 가까이 불가사리를 잡은 덕에 불가사리 구제 우수 어촌계로 뽑혀 받은 1억6천만원의 상금에 주민들이 4천만원을 보태 3∼5㎝짜리 전복 새끼 15만마리를 사들여 양식 중이기 때문이다.마을 앞 3백m 안쪽에 있는 22㏊ 규모의 공동 양식장에 뿌려진 새끼 전복들은 2년 정도 지나면 5∼10배의 엄청난 소득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돼 불가사리 잡이에 더욱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마을 최정일(58) 어촌계장은 “불가사리가 훑고 지나가면 전복·고동 할 것 없이 껍질만 남는다”며 “불가사리 구제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양식 어장은 못쓰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계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이놈들이 우리 어장엔 발을 못 붙이게 할 겁니다.끝까지 싸우는 거지요.”

영덕=홍권삼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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