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담 성사 땐 박근혜·김정은 간접대화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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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7일 전군 주요 지휘관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조정환 육군참모총장, 성일환 공군참모총장, 존 D 존슨 주한 미8군 사령관. [청와대사진기자단]

2007년 방북했던 한 유력 정치인에게 당시 실력자로 인정받던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대뜸 “청와대를 들러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 오셨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우리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고 왔는지부터 확인하더라는 것이다. 북한에선 최고 지도자의 발언과 지시가 내치·외교의 유일한 기준이다. 북한은 그런 자기들의 잣대를 남한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곤 했다.

 오는 12일 남북 장관급 서울회담이 성사될 경우 남북 정상 간의 ‘간접대화’가 이뤄질지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이 과거의 방식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희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서울회담으로 내려온 북측 대표단의 면담이 성사되면 남북 정상이 메신저 정치를 할 수도 있다.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선 서울회담도 중요하지만 박 대통령과 북측 대표단 간의 면담 여부가 오히려 더 의미 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남북대화의 경험이 있는 민주당에선 면담을 권고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문재인 의원은 이날 서울 정동의 한 식당에서 임동원·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박지원 의원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문 의원은 “(남북) 회담이 성사되면 박근혜 대통령께서 북측 대표단에 대북정책의 진정성이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갖고 있는 의미를 직접 전달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2000년 6·15 정상회담 때 특사로 움직였던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북측 회담 대표가 박 대통령을 면담하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메시지를 직접 전할 기회가 만들어진다”고 기대했다. 다른 이들도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며 “기회를 반드시 포착해 성과를 낼 수 있게 정부가 만반의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고 한다.

 과거 서울을 찾았던 북한 대표단이 대통령을 예방했던 전례도 있다. 김대중(DJ) 정부에선 2000년 7월 남북 장관급 회담 당시 전금진 북측 단장이 김 대통령을 예방했고, 그해 9월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선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청와대를 찾았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2005년 6월엔 남북 장관급 회담으로 내려온 권호웅 북측 단장과, 그해 8월 8·15 민족대축전으로 서울에 온 김기남 북측 단장이 당시 노 대통령을 예방했다.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4년 후인 2009년 8월엔 DJ 서거에 따른 조문단으로 내려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면담했다.

 그러나 이번에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간접대화가 성사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먼저 북한이 대표를 어느 정도 급으로 할지 윤곽이 나와야 한다. 김용현(북한학) 동국대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 곁에서 대남 정책을 책임지는 최고위 그룹으로 간주되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온다면 이는 김 위원장의 특사로 내려온다는 의미까지 포함된다”고 밝혔다.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은 서울회담 제안에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는지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대통령의 뜻도 포함된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과 북측 인사의 면담 가능성에 대해선 “당국 간 회담을 하자고 했고, 관련된 논의에 대해선 추가로 의견 교환이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답했다. 신중한 태도이긴 하지만 가능성을 아주 닫아놓진 않고 있는 상황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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