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줄지 않는 119구급대원 폭행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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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왕섭 천안서북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지방소방장

필자는 천안에서 올해 18년차 소방관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그동안 대부분의 기간을 119구급대원으로서 공공안전서비스의 최일선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119구급대가 출동하는 신고내용을 보면 다양한 사건사고 등으로 정말 급박하고 안타까운 사연이 적지 않다. 이에 119구급대원 또한 이런 신고사항에 대해 적극 대처하기 위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얼마 전 자정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출동 대기실 무전기 스피커를 통해 인근 119구급대원의 다급한 목소리로 “구급대원이 폭행당하고 있으니 즉시 현장으로 경찰 출동 요청함” 이라는 내용이 들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관내 출동관계로 안타까운 마음만 가질 뿐이었다. 사건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폭행자가 연행되면서 사건은 일단락 됐다고 한다.

 이튿날 당시 촬영된 동영상을 보고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119구급대원이 머리에 상처를 입고 도로를 향해 뛰어드는 취객을 제지하려 하자 욕설과 함께 얼굴과 다리 할 것 없이 마구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녹화돼 있었다. 주변에서 간간이 시민들이 “아이고. 저걸 어째.” 하는 안타까운 탄성이 연발되고 있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 영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일순간 가슴 한구석에 분노와 함께 한편으론 착잡한 심정이 교차됐다. 필자 역시 이와 유사한 사례를 겪어보아 당시의 모욕감이란 것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다. 직업선택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소방공무원은 국민이 부르면 불철주야 언제든지 달려가 도움을 주는 공복(公僕)이다. 옳다. 국민의 머슴이다. 대다수 119구급대원이 그러하듯 필자 역시 출근하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출동해서 업무에 임하고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본인들에게 도움을 주러 달려간 사람에게 폭언과 욕설, 심지어는 서슬 퍼런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가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단 말인가.

소방조직 내부의 여건 및 사회 각 분야의 눈부신 발전은 미처 인간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숨 가쁘게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도 폭행당하는 119구급대원의 숫자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이런 폭력은 사회에서 어떠한 상황과 수단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사실상 119구급대원 폭행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소방방재청 자료에 의하면 최근 3년간 119구급대원 등 소방관 폭행사건은 264건이 발생했고 이중 89건이 사법처리 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폭행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만취상태의 환자 혹은 보호자 등에 의해 행해졌다고 하니 고질적으로 잘못된 음주문화의 획기적인 개선과 개개인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정왕섭 천안서북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지방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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