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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강국 첫발은 신약 가치 인정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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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상석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부회장

최근 일본을 방문해 일본제약협회(JPMA) 관계자들을 만났다. 일본 후생성과 문부과학성·경제산업성 3개 부처가 협력해 ‘올 재팬(ALL JAPAN)’이란 이름의 제약산업 육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를 인상 깊게 들었다. 아베 총리가 엔저 드라이브와 재정지출 확대에 이어 마지막 세 번째 신성장 전략으로 꺼내 든 카드는 바로 보건의료산업 육성이었다. 구체적으로 보건의료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공적 기구인 ‘일본판 NIH(미국국립보건원)’에서 3개 부처에 나뉘어 있던 보건의료산업 육성기능의 융합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일본 정부가 오픈 이노베이션에 앞장서고 있으며, 제약업계뿐 아니라 일본 종합상사들도 앞다퉈 보건의료산업 수출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전체가 미래는 보건의료산업에 있다고 보고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셈이다. 비단 일본만 보건의료산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보건의료산업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일례로 대만은 우리나라의 3배 이상인 1조원을 해마다 제약육성펀드로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제약산업의 잠재 가치를 알고 있다. 정부는 ‘2020년 세계 7대 제약강국’ 비전을 이어받아 제약산업을 국가의 신성장동력으로 지정했고, 조만간 제약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8일 보건복지부 진영 장관은 제약산업 5개 단체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제약산업을 미래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를 위해 성장의 토대가 되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지만, 역설적으로 최근 현장에서 쉴 새 없이 추진되는 약가 규제는 오히려 이를 가로막는 느낌이다. 특히 ‘과감하고 개방적인 기술혁신’을 위한 환경조성이 뒷받침되지 않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제약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사회적으로 혁신적인 성과를 낸 신약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 핵심이다.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 적정한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확신이 없다면 실패 위험과 기나긴 연구기간을 견딜 수 있는 열정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위치한 미국이나 유럽 정부에서는 신약 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정책환경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혁신적인 신약이 시장에 빨리 나올 수 있게 하거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 주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창조경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 3개 부처의 범부처 차원의 협력처럼 우리나라도 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정부가 합심해 파트너십을 발휘하는 것도 제약강국으로 가는 성공요인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업계 전문가가 참여해 산·학·관 협력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제약산업 발전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뒷받침하고 제약산업이 창조경제를 이끄는 선두주자로 성장할 수 있는 후속대책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 상 석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