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지마, 풀어, 풀지마 … 배배 꼬인 주파수 실타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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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땅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땅으로 돌아가지. 땅이 있으면 어떻게든 살 수 있어. 땅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아.”

 억척스러운 아내와 일개미처럼 일해 농토를 넓힌 농부 왕룽은 마지막 숨을 힘겹게 내쉬며 유언한다. 펄벅의 대하소설 ‘대지’ 1부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동통신 3사 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지금 이 심정이다. 이들은 21세기 이통시장의 ‘농지 개혁’, 주파수 할당 경매를 앞두고 있다. 빈농의 자식으로 죽을 것인가, 신흥 지주로 부상할 것인가를 놓고 통신 3사가 퇴로 없이 맞서고 있다. 통신업계는 벌써부터 샅바싸움이 한창이다. 농부에게 땅이 그렇듯, 통신업체에 주파수는 사업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11년 진행된 1.8기가헤르츠(㎓) 대역 주파수 할당 땐 9일간이나 경매를 치르며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 SKT가 시작가(4450억원)의 2배가 넘는 9950억원에 따냈다. 이번 역시 이통 3사 모두 상황은 절박하다.

 국내에서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가 시작된 지 1년9개월 만에 가입자 수는 2100만 명에 달한다. 특히 무선인터넷 사용량이 급증해 망은 이미 붐비고 있다. 정부가 LTE용으로 통신 3사에 1.8㎓와 2.6㎓ 대역 주파수를 추가로 할당하려는 것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통신 주파수 경매를 8월까지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경매의 목적은 통신 3사가 현재보다 2배 넓은 ‘광대역 LTE’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 LTE 서비스는 20메가헤르츠(㎒) 폭(양방향 기준)에서 이뤄지는데, 폭이 2배가 되면 속도가 2배가 된다. 이번에 1.8㎓에서 35㎒ 대역 한 곳, 2.6㎓에서 40㎒ 대역 두 곳 등 모두 세 곳이 확정적으로 경매에 나온다. 이번 경매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대역은 아직 경매에 나올지 확정되지 않은 ‘KT 옆 땅’ 15㎒다.

 3사의 기싸움이 본격화한 건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주파수 할당 대역에 KT가 현재 사용하는 1.8㎓의 인접 대역이 거론되면서부터다. KT가 이 주파수를 낙찰받을 경우 기존에 써온 대역과 자연스럽게 합쳐져 타사보다 광대역 LTE 구축에 유리해진다. 경매에 나올 다른 세 곳의 대역은 모두 기존에 쓰는 망과 떨어져 있다. 그래서 ‘문전옥답을 경매에 내놓느냐 마느냐’가 뜨거운 감자다. 당연히 KT는 적극 찬성, SKT와 LG유플러스는 결사 반대다.

 ◆형평성 vs 효율성=SKT와 LG유플러스는 “KT 인접망이 경매에 나오는 것은 특혜”라고 주장한다. 3사의 인접망이 모두 매물로 나오면 몰라도 KT 옆 대역만 경매에 나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사의 광대역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1조원의 돈을 들여 KT의 광대역화를 막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KT는 국가경제 차원의 효율성을 내세운다. 김희수 KT경제경영연구소 부소장은 “전파법 3조에도 ‘정부가 한정된 전파자원을 공공복리에 최대한 활용한다’는 규정이 들어 있다”며 “수요가 있는 주파수를 매물로 내놓지 않는 것은 이 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KT가 인접대역을 받으면 전체 통신시장의 투자비용이 줄어드는데, 다른 통신사들이 ‘나에게 득이 없으니 너도 안 된다’는 식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옥토 안겨주는 꼴” vs “개간에 흘리는 땀은 마찬가지”=SKT·LG유플러스는 망 투자 비용과 시간의 차이를 강조한다. 강학주 LG유플러스 상무는 “KT가 인접망을 받으면 ‘2배속 LTE’ 구축까지 6개월간 3000억원만 들이면 되지만 우리는 2∼3년간 2조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KT는 옥토를 받는데 자신들은 황무지를 일궈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KT는 “개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옥토는 없다”고 반박한다. “인접망에 LTE를 까는 비용으로 6500억원을 예상하며, 광대역 LTE에 더해 보조망까지 깔아야 하기 때문에 총 투입되는 비용이 4조원대로 타사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양측이 주장하는 수치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이에 대해 미래부 최준호 주파수정책과장은 “어느 쪽의 계산이 옳은지 검증하기 쉽지 않다”며 “할당계획을 만들기 전 전문가들에게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판이 뒤집힌다” vs “대세에 영향 없다”=이번 주파수 할당이 업계 판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SKT·LG유플러스는 “KT가 인접망을 가져가 ‘2배속 LTE’를 먼저 달성하면 속도에 민감한 LTE 가입자가 KT로 대거 빠져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칭 ‘빈농의 아들’인 업계 3위 LG유플러스가 가장 민감하다. 이 회사는 LTE 전국망을 가장 먼저 구축하는 등 LTE에 올인했다. LTE 시장에서 이렇게 선제적으로 치고 나갔는데 KT가 새 주파수 주인이 되면 경쟁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3월 말 기준으로 이동통신 가입자는 SKT·KT·LG유플럿스가 각각 50%, 30%,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LTE 점유율은 각각 48%, 26%, 26%다. KT는 “통신시장에서 1년 내외의 도입기간 차이로 경쟁이 망가진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2007년 KT가 ‘쇼’ 브랜드로 3G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시작하자 즉시 점유율이 올랐지만 타사들이 곧 대응해 1년 후에는 다시 예전의 점유율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LTE 3위, 배려할까 감수할까=KT는 인접망을 받아야 할 이유로 LTE 경쟁에서 뒤처진 자사의 상황을 든다. 2G 서비스 종료를 기다리느라 LTE 시작이 늦어진 데다 2010년 할당받은 900㎒ 대역 주파수 역시 혼선 문제로 아직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타사보다 불리한 처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LG유플러스가 2년 전 2.1㎓에 단독 입찰하도록 정부 배려를 받았던 사례를 든다. 반대편에서는 “경영 판단과 투자 미비로 인한 열세였기 때문에 배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미래부는 지난달 말 3사 주파수 담당자들을 불러 이러한 논의를 했으나 평행선을 달렸다. 도통 타협점이 보이지 않자 미래부는 말을 아낀다. 통신 담당인 윤종록 제2차관이 KT 부사장 출신인 것도 공교롭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일까 봐 난처한 상황이다. 조규조 미래부 전파정책관은 “3사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려고 노력 중”이라며 “현재 나온 안보다 더 좋은 방안이 있는지 전문가들과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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