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 설계 키워드는 친밀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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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극장 컨설턴트사인 TPC(Theatre Projects Consultants)가 최근 창립 45주년을 맞았다.

한양대 공대 건축공학부 전진용 교수(건축음향 전공)가 최근 미국 코네티컷주 노워크에 있는 TPC 본사를 방문, 창립자인 리처드 필브로와 만나 21세기형 극장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극장 컨설턴트란 타당성 조사, 예산 확보, 운영방안, 장비 선택, 음향 설계 등 관객과 공연단체들의 요구와 수요를 예측해 구체적인 설계와 건축에 반영하는 전문가다.

-극장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친밀감(intimacy)'이다. 연주자(무대)와 관객(객석)이 서로의 느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극장은 일방적으로 보고 듣기만 하는 영화관과는 다르다. 공연장에 가는 것은 단순히 보고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느끼고 참여하기 위해서다. 관객이 연기자의 눈동자와 표정을 볼 수 있으려면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20m를 넘으면 안된다."

-건축음향에서도 친밀감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눈을 감았을 때 소리가 온몸을 둘러싼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런던 코벤트가든, 뮌헨 슈타츠오퍼 등을 최고의 극장으로 생각한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는 바그너의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처럼 '객석의 민주화'를 내세워 박스석을 없앤 데다 어두운 콘크리트로 마감해 극장 분위기가 죽었다. 모든 관객이 무대를 정면으로 보고 있는 영화관 스타일의 극장에선 라이브 공연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공연예술이 멀티미디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관객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을 제공해야 한다. "

-그럼 옛날 스타일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1920~70년대에 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공연장은 거의가 영화관 스타일이다. 기능성을 앞세우며 발코니와 박스석을 없애 '죽은 극장'을 양산하고 말았다."

-박스석은 음향을 확산.반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시야가 나쁜 데다 신분 차별을 상징하지 않는가.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힐 수 있고 무대가 앞과 좌우 3차원으로 객석에 둘러싸인 느낌을 준다. 박스석은 무대와 객석 사이의 에너지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1978년 복구 공사를 막 끝낸 영국 노팅엄 로열 시어터의 객석에 앉아 일종의 전율감을 느꼈다. 정말로 극장에 와 있구나 하는 느낌 말이다.'옛날로 돌아가라'는 계시를 받은 셈이다. 콘서트홀에도 박스석을 설치하라고 권하고 있다."

-조명 디자인과 극장 컨설팅은 어떤 관계가 있나.

"극장 컨설턴트 중에는 조명 디자이너 출신이 많다. 오랜 무대 경험으로 관객의 시선을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대 작업을 해본 사람이 극장에 대해 조언을 할 수 있다. 무대 장비의 디자인과 설계 과정에 시공업자가 개입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그들은 백스테이지의 생리를 잘 모른다."

-극장 신축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키멜센터 베리존홀이라는 전용홀을 갖는 데 무려 1백50년이 걸렸다. 극장 컨설턴트의 자문을 받아 충분한 사전 검토와 철저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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