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의 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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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는 6일 중요한 결단을 하나 내렸다. 공산국가인 「유고슬라비아」 과학자에게 입국을 허용한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 안전관리관 「S·나키세노비치」씨를 단장으로 한 3명의 시찰단은 13일부터 16일까지 우리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운동 선수의 경우, 「유고」의 축구「팀」이 지난 61년 한국에서 국내「팀」과 경기를 한 적은 있다. 그러나 작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세계교직단체연합총회」에는 「유고」대표가 참석하지 못했다. 입국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결단은 국제사회와의 통풍구를 좀더 넓게 터놓은 데 뜻이 있다.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고 나 할까. 공산권에 문호를 개방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제 외교의「터부」가 하나 무너졌다는 것에 뜻이 있다.
작년 4월 한국의 한 의학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리는 국제보건 기구의 결핵학회에 참석하려다가 실패했다. 이때에도 그 국제 학술회의에 참가한다는 의의보다는 그 학자에게 여권이 발행되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 한국도 국제사회의 일원인 한 그 영향력을 벗어날 수는 없다. 어떻게 그것에 대처하느냐가 바로 정치 외교의 능력이며 여유인 것이다.
만일 한국의 「유엔」외교가 강대국 일변도에만 의존했다면 오늘의 현실은 상당히 난처한 지경이었을 것이다. 「유엔」에는 서울의 인구보다 적은 나라가 적어도 30여개 국이라는 현실, 그들이 뜻하지도 않은 「아프리카」 미개국의 진출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외교의 역학은 추상적인 고등수학의 범위를 넘는다. 역사가 지금의 상태에서 화석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깊은 역사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IPU 한국 대표의 입국을 거절한 소련보다는 「유고」대표의 입국을 허용한 우리편이 훨씬 대범하다. 그렇게 왕도를 선택하는 외교는 얼마든지 「스케일」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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