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독도 해법, 작은 것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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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부의 김진형 해군 대령은 독도 사태 이후 지금까지 수십장의 커다란 세계지도를 선물했다. 대상은 자신의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의 미국인 친구들이다. 한국에서 제작된 이 지도에는 일본해나 다케시마는 없다. 선명하게 표기된 동해와 독도가 있을 뿐이다.

"교실이건 자기방이건 벽에 걸린 지도를 보며 자란 미국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어, 그거 독도라고 표시된 걸 봤는데'하지 않겠느냐"는 게 김 대령의 소박한 기대다. 그는 29일 주미 한국대사관을 방문한 미 해사 생도들에게도 이 지도를 선물로 줬다. 귀국할 때까지 힘 닿는 데로 지도를 돌리겠다고 한다.

워싱턴 한국문화홍보원은 미국 잡지들을 뒤지고 있다. 한국에 대한 설명이나 표기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찾아내기 위해서다. 최근 한국 설명이 왜곡된 책을 하나 발견했다. 미국내 동전수집 애호가들의 바이블로 불리는 '월드 코인스' 연감이다. 물론 시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미국내 교포사회도 사발통문을 돌리고 일본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처럼 모두가 한목소리다.

하지만 막상 한.일 갈등이 터져나올 때 미국에서 한국이 맞부닥치는 현실은 간단치 않다. 미국인 중 독도 문제에 관심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울분에 찬 한국인이 할복 자살을 시도하는 사진을 미 언론을 통해 접한 미국인들은 고개를 흔든다. "섬뜩하고 아무래도 비이성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을 좋아하는 미국인들도 "한국의 반응은 과잉이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틈타 어떤 일본인들은 "무인도 하나로 한.일 관계를 끝장내려는 듯 덤비는 게 한국인이다. 그들은 너무 감정적이고 공격적이고 불합리하다. 미국에 대해서도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논리를 미국 측에 전파하고 다닌다고 한다. 미국 여론이 한국 편을 들지 못하게 하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독도 문제는 어차피 단시간 내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게 국제분쟁으로 번져서 좋을 게 없다. 결국 국제사회에서 누가 더 친구가 많고, 누가 여론의 지지를 더 받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에게 지도를 선물하고, 한국에 대한 잘못된 설명을 바로잡는 건 하찮아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선 지금부터라도 진짜 해야 할 게 그런 일이다. 성질을 벌컥 내기보다는 앞으로 뭘 해 나갈지 고민하는 게 더 필요하다.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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