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선·LTE폰 싹쓸이…中 '기술 역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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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대형 크루즈선인 ‘타이타닉2호’를 호주 재벌이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조선업계는 화들짝 놀랐다. 이 배를 만드는 곳이 중국 진링조선소였기 때문이다. 중국 업계 최초의 크루즈선 수주였다.

 특히 크루즈선은 조선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 등이 결합된 분야라 중국의 추격이 쉽지 않다고 국내 업체들이 자신하던 분야였다. STX조선해양이 인수합병한 유럽 자회사를 제외하면 우리 기술로 크루즈선을 만든 적이 없다. 중국은 크루즈선을 비롯해 그간 국내 업체가 독점하다시피 해 온 드릴십,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같은 고부가 선박과 해양구조물도 수주에 성공하고 있다.

 조선뿐이 아니다. 중국은 미래산업에도 재빨리 둥지를 텄다.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가 발간하는 격월간지 ‘테크놀로지 리뷰’는 최근호에서 “유전자 서열 분석(Genome Sequencing) 비용이 ‘아이폰’ 가격보다 싸지는 시대가 온다. 중국 기업에 의해서”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2013 세계 50대 혁신기업’ 명단에 중국 선전화다지인(BGI)을 올리면서다. 생소하기만 한 이 업체는 세계 유전자검사 시장 점유율이 60%에 달하는 초우량 업체다. 중국은 이미 세계 유전자검사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① 현재 LTE의 2배 속도로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화웨이의 어센드P2 스마트폰 ② 세계시장 점유율 4위로 급부상한 TCL의 LCD TV ③ 5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한 하이얼 냉장고 ④ 중국 최초의 크루즈선 타이타닉2호(조감도).

싼값을 내세워 한국을 추격하던 중국이 이제 기술력을 앞세워 크루즈선처럼 한국을 제치는 역전극을 펼치고 있다. 철강, 전자 등 주요 업종의 추격도 무섭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철강 품질 경쟁력이 100이면 중국의 수준은 99다.

 무역 최일선에 있는 KOTRA는 경고음을 울렸다. KOTRA는 25일 ‘중국 기업이 달라진다’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4분기 세계시장에서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화웨이와 ZTE가 각각 3위와 5위에 올랐다”며 “저가·저급품의 대명사로 통하던 중국 기업들이 저가·고급화 전략에 나서면서 글로벌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KOTRA가 열거한 냉장고 판매량 5년 연속 세계 1위 하이얼, 세계 LCD TV시장 4위 TCL 등 위협적인 추격자는 수두룩하다. 화웨이·HTC 등 세계 수준의 IT기업을 2015년까지 2~5개 사 더 키울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KOTRA는 “중국 기업은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키워 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개발을 한 후 해외 시장에 고급 기술 제품을 내놓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반면에 한국 기업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과거 주주총회는 신사업·신제품 발표장 같았지만 올해 주총에선 신사업 발표를 한 기업이 10곳 중 한 곳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기업의 투자는 계속 게걸음이고,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은 아직 구체화되지 못했다.

 박한진 KOTRA 중국사업단장은 “중국은 이미 기술력 추격을 뛰어넘어 제품의 상품화 방안과 브랜드 가치를 고민하는 단계까지 왔다”며 “기존 사업에서 기술력을 키우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성장산업을 찾아 앞서 나가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진석·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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