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하나 없이 쇄국축구로 날다 ‘황선대원군’ 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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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포항은 황선홍 감독의 새 별명 ‘황선대원군’에 걸맞은 합성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 포항 구단]

프로축구에 ‘황선대원군’ 돌풍이 불고 있다.

 ‘황선대원군’은 황선홍(45) 포항스틸러스 감독과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합성어다. 포항은 올 시즌 외국인 선수가 한 명도 없다. 이런 한계를 딛고 K리그 클래식(1부리그)에서 2승1무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국내 선수만으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는 황선홍 포항 감독을 19세기 말 쇄국정책으로 부국강병을 노렸던 흥선대원군과 연결해 만든 별명이다.

 어물쩍 이긴 게 아니다. 그 흔한 브라질 공격수 하나 없지만 3경기에서 7골을 펑펑 터트렸다. 외국인의 빈자리를 포항에서 자라난 유스팀 출신이 메웠기에 더 뜻깊다. 황진성(29)·고무열(23)·이명주(23)·신진호(25)·신광훈(26) 등 포철공고 출신 5인방의 기록을 합치면 3골 3도움이다. 7골 중 무려 6골이 이들의 발끝을 거쳤다. 포항 선수 32명 중 절반에 가까운 15명이 포철공고 출신이다.

 외국인 선수를 일부러 안 뽑은 것은 아니다. 철강 경기 침체로 포스코가 지원금을 줄였다. 몸값이 싼 외국인 선수는 영입할 수 있었지만 황 감독은 “국내 선수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난해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영입한 지쿠(강원)·조란(선양)·아사모아(대구)가 제 몫을 못하고 실패한 게 결과적으로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황 감독은 “지난해 시즌 초 부진했다. 워크숍을 했는데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가 골을 못 넣는다’고 불평하더라. 골을 넣을 생각은 안 하고 외국인 공격수에게 의존하는 걸 보니 속이 뒤집혔다.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 골을 넣을 생각을 하라고 따끔하게 야단쳤다”고 떠올렸다. 그 후 황 감독은 국내 공격수의 출전 비중을 점점 높였다. 지난해 10월 열린 FA컵 결승에서는 국내 선수만으로 승리하고 정상에 올랐다. 황 감독의 ‘쇄국정책’은 이미 지난해 검증된 전략이었던 셈이다.

 황 감독은 “구단 상황이 나아지면 좋은 선수를 영입하고 싶다”면서 “그렇다고 외국인 선수에게 의존하는 축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황 감독은 포항 클럽하우스의 작전판에 ‘포항이라는 자부심’이란 문구를 써놓았다.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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