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초연금으로 국민연금을 흔들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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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선공약인 기초노령연금을 손질하면서 국민연금에 불똥이 튀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임의가입자 수가 20만1531명으로 한 달 동안 7223명 줄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전업주부를 중심으로 1만 명이 넘게 탈퇴했기 때문이다. 기초연금으로 인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면서 우려해온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이다. 그동안 임의가입자 수는 노후 불안에다 국민연금만 한 재테크가 없다는 입소문을 타고 2004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왔다. 임의가입은 노후에 유족연금·장애연금 혜택까지 발생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이런 임의가입이 뒷걸음질 친 것은 박근혜 정부가 내년 7월부터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결합해 시행하겠다고 밝힌 게 결정적인 원인이다. 소득 하위 70%의 노인 중 국민연금을 못 받으면 기초연금 20만원을 주고, 나머지는 국민연금과 연동해 차등(差等)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럴 경우 국민연금에 가입한 저소득 노인들은 최대 6만원을 손해 보게 된다. 어쩌면 “국민연금 안 내고 기초연금 20만원 받는 게 낫다”는 탈퇴의 봇물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다 기초·국민연금을 섞어 운영하다 보면 결국 국민연금만 축날 것이란 불신도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한번 불신에 휩싸이면 좀체 벗어나기 어렵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4년의 악몽이다. 국민연금이 곧 고갈된다는 괴담이 유포되면서 탈퇴 운동이 일어나고, 세대 갈등 또한 여간 심각하지 않았다. 결국 2007년 연금개혁(지급 시기를 늦추고,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0%로 조정)을 통해 가까스로 불길을 잡았다. 이후 저금리 시대가 열리고 국민연금 수익률이 선전하면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임의가입자가 급증하고 자영업자와 개인사업자 같은 지역가입자들도 덩달아 늘어나는 선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기초연금에 얽매여 겨우 회복시켜 놓은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더 이상의 홍역을 치르지 않으려면 다시 첫 단추부터 제대로 꿰야 한다.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 재원은 다른 데서 빼오는 것이 아니라 세금으로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원칙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치면서 변질됐다. 연 10조원의 재원 마련이 마땅치 않자 슬그머니 국민연금과 연동시켜 버렸다. 대선 공약은 지켜야겠고, ‘증세’는 피하려다 보니 자꾸 꼼수만 부린 것이다.

 엄격히 말해 기초연금은 연금이 아닌 공공부조다. 국민연금처럼 보험료를 낸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사회보험과 구별돼야 한다. 국민연금은 가입자 2028만 명의 노후가 걸린 문제다. 국민연금은 세대 간 분담을 놓고 감정대립이 첨예해지고, 가입자들은 공무원·군인연금과의 상대적 차별에 분노하고 있다. 쓸데없이 이들을 자극해 반발을 부른다면 어떤 쓰나미가 몰려올지 모른다. 기초연금은 박 대통령이 밝힌 원칙에 따라 세금을 거둬 충당하는 게 맞다. 기초연금처럼 복잡하고 예민한 사안일수록 정도(正道)로 풀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