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시 묶어 시집 선물하는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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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병숙 교사(가운데)가 14일 시낭송회 뒤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김형수 기자]

종업식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서울 중동 신북초등학교 3학년 1반 교실에서는 시낭송회가 열렸다. 책보다는 컴퓨터 화면이 익숙한 아이들이 한 해 동안 직접 쓴 시를 묶어 시집을 내며 마련한 조촐한 행사다. 요즘 흔치 않은 이 일은 담임교사인 유병숙(57)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해로 교사 경력 25년째인 유씨는 해마다 맡은 반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연말에 아이들의 시를 묶어서 시집으로 출간해왔다. 이번에 나온 시집이 10번째다. 2004년 월간 ‘한국수필’로 등단한 그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한인현 글짓기 지도상’도 수상했다.

 유씨는 학기 초부터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재미있는 시를 골라 읽어주고 ‘시 쓰기 공책’을 마련해 1주일에 한 편씩 시를 쓰게 했다. ‘시가 뭐지?’하던 아이들도 조금씩 변해갔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숨바꼭질을 하고, 창밖에 목련이 떨어질 때는 잠시 수업을 멈추고 시상이 떠오르도록 도와줬다. 이렇게 모은 시를 아이들마다 5편씩 골라 시집을 냈다.

 그는 “아이들은 누구나 몸과 마음에 시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 한 행만 멋지게 표현해도 큰 소리로 읽어주며 칭찬을 해주면 자신감이 붙는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시를 읽으면 제가 더 행복해집니다. 저를 ‘시 선생님’으로 기억해주지요. ”

글=박혜민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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