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과 욕실 흔적보니…" 여친살해범 자택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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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5일(현지시간) 남아공 프리토리아 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한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그는 공판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리토리아 로이터=뉴시스]

여자 친구 살해 혐의로 체포된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7·남아공)의 고의적 범행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현지 사법 당국과 언론들은 의도적 살인에 무게를 두는 모양새다. 피스토리우스는 14일 오전(현지시간) 남아공 프리토리아에 있는 자택에서 유명 모델인 여자 친구 리바 스틴캠프(30)에게 권총 네 발을 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스틴캠프

 남아공의 일요판 신문인 시티 프레스는 17일 경찰의 말을 인용해 “피스토리우스가 침실에서 먼저 한 발을 쏜 뒤 부상을 입은 채 욕실로 도망간 스틴캠프에게 세 발을 더 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오전 3시쯤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첫 총성이 들린 지 몇 분 후 다시 총소리가 들렸다”는 이웃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와 함께 집 안에서 피가 흥건한 크리켓 배트가 발견됐다. 스틴캠프가 방어 차원에서 썼거나 피스토리우스가 욕실 문을 부수기 위해 썼을 것으로 신문은 추정했다. 신문은 또 피스토리우스가 총격을 가한 뒤 곧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에 와 줄 것을 요청했으며, 아버지가 누나와 함께 서둘러 도착했다고도 덧붙였다. 영국 주간지 선데이 미러는 “스틴캠프가 피스토리우스의 절친한 친구인 25세 럭비 선수와 스캔들이 있었다”며 치정살인 가능성도 제기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 등 언론은 피스토리우스의 과거 폭력 전력이나 총기류에 대한 애정, 복잡한 이성관계 등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그는 2009년 자택에서 한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경찰서에 구금된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종종 사격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데일리 메일은 지난해 런던 올림픽 이후 늘어난 유명세와 부 덕분에 이성관계가 복잡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당초 현지 언론들은 “피스토리우스가 서프라이즈 파티를 펼치려던 스틴캠프를 절도범으로 오인해 총격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사귄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좋은 관계 였다는 점도 이러한 추측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가 이를 반박하며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티 프레스도 “스틴캠프가 시신으로 발견될 당시 잠옷을 입고 있었다”며 두 사람이 전날부터 함께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15일 보석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보석 공판에서 법원에 도착한 피스토리우스는 곧바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음을 터뜨렸다. 공판이 진행되는 40분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판정은 보석 청문을 19~20일로 연기했다.

 공판이 끝난 뒤 피스토리우스의 가족은 “피스토리우스가 살해 혐의에 대해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는 성명을 냈다. 이어 “그는 스틴캠프의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덧붙였다. 스틴캠프의 아버지인 배리 스틴캠프는 “피스토리우스는 우리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 밝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증오하지 않는다”며 섣부른 판단을 유보했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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