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서울국제하프마라톤 이모저모] 위암 이긴 이명식씨

중앙일보

입력

1시간 52분 34초.

4일 서울 잠실벌에서 열린 중앙일보 서울국제하프마라톤대회 마스터즈 부문 하프코스 (21.0975㎞) 를 완주한 이명식 (李明植.32.서울 은평구 대조동) 씨의 기록이다. 이 기록은 하프코스에 참가한 일반인 9천39명중 4천등 내외지만 그에게는 신기록을 만든 마라톤선수의 성과 이상으로 값진 것이다.

암과의 투병중에, 그것도 만 1년만에 일궈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李씨의 기록은 한계상황에 도전하는 모험과 생존 의지로 뭉쳐진 결정체였다.

"숨이 가빠질때마다 투병기간동안 가장 힘들던 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스쳐가는 가로수를 암세포라고 생각하며 하나씩 뒤로 했습니다. "

李씨가 위암2기 선고를 받은 것은 지난해 3월. 2남3녀의 장남으로 자영업을 하며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李씨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일이었다. 한달 뒤 위의 3분의 2를 도려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하던 일도 모두 그만두고 병치료에만 매달렸다.

수술보다 힘들다는 항암제 투여도 다섯차례. 항암제를 맞고 나면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먹은 것마저 다 토해냈다. 너무 고통스러워 중간에 치료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하지만 눈물로 호소하는 아버지 (62) 때문이라도 병마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었다.

그러던중 지난해 10월 TV에서 마라톤 경주를 보면서 "저것을 통해 암의 고통에서 벗어나 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지난 5월 건강이 다소 호전되자 은평구 아마추어 마라톤 동호회 '은천마' 에 가입했다. 처음 하루에 5km씩 불광천 주변을 달리기 시작했을 때 다리가 퉁퉁 붓고 근육에 힘이 없어 곧잘 쓰러지기 일쑤였다. 지난 7월에는 무리한 연습으로 탈장 수술까지 받았다.

달리기를 통한 李씨의 암 극복에는 '은천마' 회원들이 큰 힘이 됐다. 항상 李씨와 함께 보조를 맞춰 뛰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들과 함께 5km, 7km, 10km로 거리를 조금씩 늘릴 수 있었고, 호흡을 제대로 고를 수 있게되면서 건강도 몰라보게 향상됐다.

지난 10월 이들과 함께 참가한 통일마라톤대회에서는 10km구간을 57분58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동호회 회원 2명은 중앙마라톤에서도 자신의 기록을 포기해가며 李씨와 끝까지 함께 뛰어주었다.

李씨의 소망은 마라톤 연습을 계속해 내년에는 풀코스에 도전하는 것. 내년 4월부터 항암제를 끊고 조그만 장사라도 해볼 계획이다.

"처음 도전한 하프코스를 완주하게 돼 기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이제는 어떤 일도 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입니다. "

미혼인 李씨는 "하루빨리 정상인으로 돌아가 부모님께도 효도도 해야겠다" 며 환하게 웃었다.

홍주연.강병철 기자◐P◑ <jdre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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