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축구 발전은 건전한 人事 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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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판에서 감독과 코치는 어떤 관계일까.

코치는 모방송사 TV드라마인 '여인천하'에 나오는 엄상궁을 연상하면 된다. 감독과는 주종 관계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감독과 코치를 기업체 조직에 대입해 보자. 감독은 기업의 중역, 코치는 부장쯤 된다.

인사철이 되면 중역은 부장 자리에 능력있는 사람들을 발령내려고 인사부에 압력을 넣는 등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학연이나 지연 등을 엮어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노력도 하지만 능력이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번듯한 기업의 풍토다.

그러나 축구판은 다르다. 중역의 역할을 하는 감독들은 코치를 선임할 때 가장 먼저 신경쓰는 것이 '혹시 코치가 나를 배반하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조직폭력배처럼 철저히 자신을 떠받드는 시종 같은 사람을 선택한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학연과 지연이나 사제관계 등의 특별한 인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물론 코치를 직접 감독이 인사발령을 내지 않고 구단이 결정하는 형태를 취하지만 이는 형식에 불과한 통과의례다. 그렇게 선임된 코치는 감독의 뒷바라지에 치중한다. 업무와 관련이 없는 감독의 잔심부름부터 심지어 감독의 기사 노릇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심한 경우는 감독이 술 취해 부르면 자다가도 나가 대리운전을 하는 코치가 있다.

성남 일화의 차경복 감독은 1998년 취임하며 학연이나 일반적인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김학범 코치를 선택해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차감독은 "94년 애틀랜타 올림픽대표팀 당시 비쇼베츠 감독 밑에서 성실히 코치 생활을 했던 김코치를 끌여들였다"고 회상했다.

차감독은 감독 절대 권위의 징표이자 상징인 휘슬을 과감히 김코치에게 내줬다. 김코치가 선수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게 하기 위해 훈련 프로그램과 경기시작전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선수 기용·교체 등의 결정 때 코치의 의견을 존중했다.

스포츠리더십에서 감독의 유형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한다. 기관차형과 로마전차형이다. 기관차형은 기관차가 끄는 대로 객차는 무조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에 비유한 리더십이다. 기관차형 리더들은 주위의 스태프들 의견보다는 경험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팀을 이끈다.

로마전차형은 마차 위에서 말들을 조종하는 리더십이다. 선수들의 의견과 코치의 견해를 십분 존중해 주는 유형이다.

차감독이 올시즌 우승을 일궈낸 원동력은 국내에서는 드문 로마전차형의 리더십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과거 올림픽·월드컵 때마다 한국축구가 실패를 거듭하며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40위권을 맴돌고 있는 이유도 바로 축구팀의 조직을 활성화하지 못한 탓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자원도 없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 경제교역 규모 10위권을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축구계보다 건전한 인사구조와 체계가 있기 때문임을 축구인들은 깨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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