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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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갑오경장 때 신학문이라고 하면 양학을 뜻했는데 이젠 우리 것과 양학과의 차이가 묘연할 정도로 우리 학문이 근대화했다. 그래도 신학문은 여전히 있고 요즘의 유행하는 지역연구라는 것 - 새롭고 보람있는 학문이다.
옛날엔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한 사람이 여러 가지를 연구하고 가르치곤 했다. 서양중세의 학자라면 으례 신학자이기 마련이었지만 그 속에서 의사도 나오고 천문학자도 나왔다. 우리나라에선 근대까지만 해도 선비라면 한문을 잘하고 서경에 통한 유학자이기 마련이었지만, 그 속에서 지력이며 수학이며 농학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실학자들이 나왔다. 그러다가 한사람의 힘으로는 인지의 모든 분야를 두루 살필 수 없게 되어 전문화의 경향이 생겼다. 깨알 만한 자기 전문 분야에는 도통해 있지만, 그 주변의 사정이나 세상이 돌아가는 일반 정세에 대해서는 무서운 냉담과 무지를 과시하는 새로운 학자형이 등장했다.
근래에 등장한 「에어리어·스타디」라는 방법은 새로운 면과 고전적인 면을 함께 지니고 있어서 흥미롭다. 각기 전문을 달리 하는 여러 학자들이 어떤 특정한 지역, 이를테면 중국을 중심으로 지식과 경험과 자료를 「풀」해서 종·횡으로 협동 연구한다는 것이 새로운 점이다. 한편 중국을 연구하되 그 나라의 어떤 특수한 면만을 좁게 깊게 파고들지 않고 중국을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하는 종합연구라는 점이 고전적이다.
우리가 미국을 아직도 정확히 모르고 있다면 얼른 곧이 듣지 않겠지만 실상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작년 말에 미국학회가 탄생하고 서강대학에서 처음으로 「미국학」강좌가 생겼다. 그후 연이어 고대·외대 등 여러 대학에 미국 중국 아세아 아주 중근동 남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기관과 강좌가 생겨나고 있다. 「에어리어·스타디」가 반드시 남의 나라 연구로 국한될 필요는 없다. 실상 가장 절실히 요망되는 것은 바로 우리 고장을 연구하는 한국학의 개척이다. 다시 신학문에 기대를 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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