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 칼럼] 그냥 ‘박근혜 정부’로 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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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호 30면

이명박 대통령이 잘한 일 중 한 가지는 처음으로 자신의 정부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붙였다는 것이다.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 같은 수식어를 들고 나왔던 전임자들과 달리 ‘이명박 정부’라고만 했다. 2007년 대선 직후 이명박 당선인 캠프에서도 처음엔 ‘실용정부’나 ‘실천정부’ ‘글로벌 정부’라고 부르자는 의견들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말만 번듯하게 갖다 붙이는 것은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 철학과 맞지 않다는 지적 때문에 그냥 이명박 정부로 결정했다고 한다.
국민의 선택으로 집권한 정부라면 당연한 일을 굳이 대통령의 철학 운운하며 포장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우리 정치도 이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신선한 선택이었다.

한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캠프가 내년 2월 25일 출범할 정부의 명칭을 놓고 또다시 같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박 당선인이 평소 민생을 강조해 온 만큼 ‘민생정부’로 네이밍(naming)하는 방안을 다음 주 인수위원회에서 공식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이 무슨 퇴행인가. 국민이 박근혜를 선택한 건 민생을 살려줄 후보로 여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나라를 지켜줄 안보 후보, 극심한 지역·이념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을 하나로 만들어줄 통합 후보, 나라의 역량과 품위를 업그레이드해 국격을 높여줄 글로벌 후보, 이런 모든 기대가 어우러져 ‘박근혜’란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박근혜 당선인이 5년간 책임지고 운영할 정부의 이름은 ‘박근혜 정부’ 외엔 달리 없다.

대통령의 집권 연장을 위해 툭하면 헌법을 바꿨던 과거엔 정부의 이름은 숫자 하나로 통했다. 이승만 정부는 1공(共·제1공화국), 윤보선 정부는 2공, 박정희 정부는 3·4공, 전두환 정부는 5공이었고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6공 정부를 자임했다.

정치후진국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런 네이밍은 92년 김영삼(YS) 후보가 처음으로 기존 헌법 아래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변화의 계기가 생겼다. 하지만 YS는 ‘김영삼 정부’ 대신 ‘문민정부’를 선택했다. 군정을 종식한 첫 대통령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국민 동의 없이 군정 세력과 3당 합당이란 정치공학으로 집권한 콤플렉스를 덮기 위한 과시적 작명이란 비아냥을 받았다. YS에 이어 집권한 김대중(DJ) 후보는 문민보다 덩치가 큰 ‘국민의 정부’란 네이밍으로 YS를 뛰어넘으려 했다. 하지만 선거로 집권한 정부면 다 국민의 정부지, 왜 DJ만 국민의 정부냐는 독선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노무현 후보도 전임자들과 차별화를 고민한 끝에 ‘참여정부’를 선택했다. 하지만 5년 내내 반대세력에 각을 세우고, 코드인사를 반복한 끝에 ‘그들만의 참여정부’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선진국 정부에선 이런 언어유희식 네이밍을 찾아볼 수 없다. 미국에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 모두 부시 행정부, 오바마 행정부로 불릴 뿐이다. 부시나 오바마가 자신의 정부를 ‘테러와의 전쟁 정부’ ‘믿을 수 있는 변화의 정부’라 불렀다면 미국인들의 웃음거리가 됐을 것이다. 워터게이트와 오일쇼크로 침체에 빠진 미국을 부흥시킨 로널드 레이건도 자신에게 아무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지만 국민이 자발적으로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 칭호를 붙여줬다. 이 이름은 미국 헌정사에 영원히 남게 됐다.

미사여구가 없어도 국정운영만 잘하면 국민은 알아주고 평가한다. 막 출범하는 정부에 ‘민생’이란 수식어를 붙이면 민생을 잘해봤자 본전이고, 조금만 잘못하면 더 혹독한 매를 맞는 부작용도 있다.

그냥 ‘박근혜 정부’로 당당하게 승부하라. 이름 석 자를 걸고 묵묵히 성과를 쌓아가면 국민이 ‘민생 대통령’ 아니라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을 지어줄 것이다. 정부 네이밍은 대통령이나 참모들이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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