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세상탐사] 자베르 경감의 눈으로 본 MB정부 5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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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호 31면

“그는 생전 처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걸었고, 역시 생전 처음으로 뒷짐을 지고 걸었다. 그날까지 자베르는 나폴레옹의 두 자세 중에서 오직 결단을 나타내는 자세만을 취했다. 그것은 두 팔을 가슴팍 위에 엇갈려 올려놓는 것이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은 경감 자베르가 자살에 이르는 장면을 이렇게 시작한다. 자베르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장발장을 풀어준 뒤 극심한 혼란에 빠져든다. 장발장이 자신을 용서했고, 자신도 장발장을 용서했다는 사실이 자베르의 삶 전체를 뒤흔든 것이다.
“그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종류의 가책감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그의 유일한 척도였던 법률적 확신과는 전적으로 다른 감정적 계시 하나가 그의 내면에 내려졌다… 친절, 헌신, 자비, 관용,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법의 눈….”

우리는 자베르가 단순한 악역(惡役)에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의의 여신을 향한 그의 철두철미한 신앙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가 ‘24601’(장발장의 수인 번호)을 지옥 끝까지 추적하려 했던 이유도 그 신앙에 있다. 그러나 자베르의 법과 정의는 장발장의 휴머니즘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자베르의 좌절, 법치의 한계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명박 정부의 지난 5년을 돌이켜 보자.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과 함께 ‘법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회문제가 됐던 ‘떼법 문화’ 청산이 그 목표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로 호되게 홍역을 치른 뒤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검찰은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광우병’ 보도를 했던 MBC PD수첩 제작진을 형사재판에 넘겼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헌법재판소는 집회 참가자에게 적용됐던 집시법 조항(야간 옥외집회 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PD수첩 제작진에게는 1, 2, 3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대정부 긴급공문 발송-1보’ 등의 글을 인터넷에 올려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로 논객 ‘미네르바’를 구속 기소했지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를 기소한 근거였던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에 대해서도 위헌 결정이 나왔다.

일련의 무죄 판결과 위헌 결정은 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관한 비판이나 보도, 정치적 의사표현을 법적 잣대로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설사 그 주장에 허위가 섞여 있다 해도 불문곡직 처벌하기보다 ‘진실의 시장’에서 걸러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져 보면 이 중 상당수는 온전히 사회적 비판에 맡겨야 할 사안이었다. 그런 사안을 사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무죄·위헌을 받게 함으로써 오히려 정당성을 부여했다. 법적 책임에 묻혀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까지 증발되고 말았다. 차라리 진실의 시장에 맡겨졌다면 반박과 재반박을 거치며 자연 정화되고, 사회도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무리한 법 적용을 했던 검찰의 잘못도 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어떤 법 조항으로든 ‘걸면 걸린다’는 의식, 법질서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인식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아닐까. 다시 레미제라블이다.

“진정한 양심으로서 거짓 양심에 저항하고, 불티가 꺼지지 않도록 방어하고, 태양을 기억하라고 햇살에게 명령하고, 진정한 절대와 허구적 절대가 대치할 경우 영혼에게 진정한 절대를 알아보라 재촉하는, 결코 패할 수 없는 인간성… 즉 신(神)을 자베르가 이해하고 있었을까?”

차기 정부는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법치주의는 법 만능주의가 아니다. 권력자의 횡포를 막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것 못지않게 법을 제대로 만들고 공정하게·신중하게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법질서가 힘 있는 자의 편에 서 있는 건 아닌지,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을 내모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억압일 뿐이다.

자베르는 센강에 몸을 던지기에 앞서 보고서를 작성한다. ‘업무 개선을 위한 몇 가지 견해’다.

“첫째, 시경국장께서 일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심에서 감방으로 돌아오는 피의자들이, 그들의 몸을 수색하는 동안, 신발을 벗고 맨발로 포석 위에 서 있습니다. 감방에 돌아온 후 기침하는 사람이 여럿입니다. 그것은 의료비 지출과 직결됩니다.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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