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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기구매에서 봉이 돼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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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용수
정치부 기자

한국 방위사업청에 미국이 25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판매금지 입장을 보였던 고고도 무인정찰기(HUAV) ‘글로벌호크’를 한국에 판매하기 위해 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승인요청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팔지 않겠다고 버티던 전략무기를 동맹국 가운데 한국에 가장 먼저 팔 수 있다는 입장을 미국이 밝힌 것은 분명 반가운 뉴스다. 의회의 승인절차가 끝나고 한국 정부와 협상이 잘되면 아시아·태평양 국가 가운데 한국이 첫 보유국이 된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다. 미국 노스럽 그루먼사가 만든 글로벌호크는 우리로선 단순한 정찰기 이상이 아닌 천군만마다. 군사용 인공위성 하나 없어 북한 정보에 대해선 ‘깜깜이’ 수준을 면치 못하던 한국이 ‘나는 첩보위성’이라 불리는 글로벌호크를 보유해 평양의 30㎝짜리 물체의 움직임까지 파악하게 된다면 북한은 기존의 작전계획과 전략을 모두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개운치 않은 건 가격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는 의회에 최대 12억 달러(4대 기준, 약 1조2800억원)를 받겠다고 공언했다. 2009년 불렀던 4억5000만 달러(약 4800억원)에 비해 세 배 가까이 오른 금액이다. 협상과정에서 가격이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국방전문가들은 미국이 그다지 많이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은 ‘한국용’으로 글로벌호크를 개발하는 데 많은 돈이 들었다고 설명하지만 한국이 들여오려는 기체는 단종(斷種)을 앞둔 구형이다.

 세계 경제가 어려운 이 참에 미국 군수업체가 우리를 통해 빈 곳간을 채우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군수산업은 부르는 게 값이다. 전례도 있다. 미국 공군이 대당 3000만~5000만 달러에 구입해 쓰는 보잉사의 F-15 전투기를 한국은 1억 달러에 60대를 구입했다. 한국 공군의 F-15K 전투기가 훈련 도중 추락하자 ‘서비스’로 한 대를 추가로 받은 적도 있다.

 방위사업청은 최근 국내 업체를 상대로 무기 원가를 부풀리는 행위에 대한 단속을 어느 때보다 강화하고 있다. 업체들이 원가를 부풀리다 발각되면 아예 방사청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한다. 글로벌호크에 대한 우리의 판매요청을 미국이 거절했을 때 정부는 중고도 무인정찰기(MUAV) 도입을 대안으로 추진하면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한국과 미국이 글로벌호크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성능은 더 좋고 가격은 낮은 무인정찰기가 개발되기도 했다. 대안이 충분한 것이다.

이쯤 되면 한국은 ‘봉’일 필요가 없다. 과연 방사청이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도 ‘갑’이 될 용기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