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작전엔 만수, 원칙엔 골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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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시즌 연속 프로농구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유재학 모비스 감독이 400승을 달성했다. 유 감독이 지난 13일 인삼공사전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뉴시스]

2006년 프로농구 모비스의 미국 전지훈련. 두 선수가 아침식사 시간에 5분 늦었다. 유재학(49) 모비스 감독은 귀신같이 이를 알아챘다. 두 선수는 일주일 동안 훈련장에서 숙소까지 약 5㎞ 거리를 뛰어서 돌아와야 했다. 모비스에선 룰을 어기면 용서받지 못한다.

 유 감독이 이끄는 모비스가 18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오리온스와의 홈 경기에서 65-49로 이겼다. 유 감독은 이날 승리로 프로농구 최초의 400승 감독이 됐고, 모비스는 SK와 함께 공동선두(16승5패)에 올랐다.

 유 감독 별명은 ‘만수(萬手)’다. 구사하는 작전이 만 가지에 이를 만큼 다양하다고 해서 붙었다. 작전은 많지만 원칙은 하나다. 사소한 룰이라도 꼭 지키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아침식사 문화다. 유 감독 역시 전날 과음했더라도 제 시간에 선수들과 아침식사를 한다. 외국인 선수 테렌스 레더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건 내 오랜 습관”이라며 저항했지만 결국 유 감독에게 졌다. 유 감독은 “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일이라면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말했다.

 1998년 역대 최연소인 35세 나이로 대우 감독을 맡았던 그는 신세기 빅스(99~2001)-SK 빅스(2001~2003)-전자랜드(2003~2004)를 거칠 때까지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1999~2000시즌엔 꼴찌도 해봤다. 팀을 옮기면서도 15년 동안 쉰 적은 없다. 그는 프로농구 최장수 감독 기록을 갖고 있다.

 실패를 통해 유 감독은 효율보다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예전엔 성적이 나빠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하며 견뎠다”고 돌아봤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룰을 만들고 지켰고, 팀과 자신을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2004년 모비스로 옮긴 이후 유 감독은 승승장구했다. 정규리그 우승 4회, 통합우승 2회를 달성하며 지도력을 꽃피웠다. 원칙주의자의 색깔은 더 선명해졌다. 양동근·함지훈 등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은 유 감독의 지도로 보석이 됐다. 벤치멤버였던 이병석·이창수·우지원이 3년 연속 우수 후보선수상을 받았다. 비결은 간단하다.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고, 기회를 공평하게 주는 것이다. 유 감독 눈 밖에 나서 벌을 받는 선수들은 “벌 받는 게 훈련보다 편하다”고 농담처럼 말할 정도다. 개인 기량이 뛰어나도 팀 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출장 기회가 줄어든다. 이 때문에 모비스 후보 선수들의 성장 속도는 다른 팀 선수들보다 빠르다.

 우지원(SBS ESPN 해설위원)은 2003~2004시즌 평균 20.5점, 3점슛 성공률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수비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유 감독 부임 후 식스맨으로 전락했다. 우지원은 줄어든 자신의 입지를 받아들였고 2006~2007시즌 우수 후보선수상을 수상했다.

 크고 작은 고비를 넘어 400승 고지에 오른 유 감독은 “초보 감독 시절엔 아내에게 ‘언제 잘릴지 모르니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는데 어느덧 400승까지 하게 됐다. 오랫동안 농구 감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

유재학 감독은 …

- 생년월일 : 1963년 3월 20일
- 신체조건 : 1m78㎝·80㎏
- 출신교 : 상명초-용산중-경복고-연세대
- 선수 때 포지션 : 포인트가드
- 가족 : 부인 김주연(49)씨와 1남(선호·22) 1녀(선아·19)
- 별명 : 만화영화 ‘톰과 제리’에서 제리
- 취미 : 낚시·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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