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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한국 현대사 교육의 맹점
배영대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지난 9일 오후 3시 경희대 청운관. 이정식 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의 ‘한국 현대사 특강’은 우리 한국사 학계가 놓치고 있는 맹점(盲點)을 되돌아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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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스탈린 “북한, 중공군 후방기지로” 지령 … 분단,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지난 2일 노환으로 타계한 한국과 동아시아 전문가 로버트 스칼라피노 전 UC버클리 교수를 평생의 은사로 기리며 못 잊는 이가 있다. 이정식(80) 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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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잘못된 신앙 있다 스탈린의 북 단독정권 지령 자료 있는데도 인정 안 해”
“런던 외무장관회담(1945년 9월 12일)→스탈린이 북한에 내린 비밀지령(45년 9월 20일:‘북한에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라’)→소련군정과 미군정 사이 소련 측 연락장교 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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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중국 도시 이야기 ⑫ 선양(瀋陽)
중국의 행정구역은 성(省)-현(縣)-향(鄕) 3등급 체제다. 성은 보통 규모의 한 나라와 맞먹는 규모다. 현(縣)은 한국의 도(道)와 비슷한 크기다. 성과 현 사이에 지구(地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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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장군 새긴 부조 기념비 임진각에 선다
권총을 든 백선엽 장군(가운데)을 중심으로 병사 등이 진격하는 모습을 담은 부조. 6·25전쟁 참전 기념비가 완공돼 25일 파주시 임진각에서 제막식을 한다. [파주시청 제공]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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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홍색 경제’ 후끈
중국 공산당 창당 90주년을 맞아 발행한 5위안짜리 기념주화. [상하이데일리 웹사이트] 다음 달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중국 공산당 혁명 성지 순례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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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의 전쟁사로 본 투자전략] 1968년 북베트남 구정 대공세
구정은 온 가족이 모여 조상을 기리는 동양 최대의 명절이다. 그러나 1968년 베트남의 구정은 축복받은 명절이 아닌 참혹한 전쟁의 일부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구정을 틈타 감행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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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철의 ‘부자는 다르다’] ‘그집 상한 고기, 다 사와라’
한동철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부자학연구학회 회장 부자의 색깔은 검은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에 검은색을 연결시키는 게 대표적입니다. 매일 나쁜 짓을 해도 별로 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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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76) 총성이 멎다
휴전이 코앞에 닥친 1953년 4월 백선엽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휴전 회담장인 판문점을 방문해 아군 측 막사를 시찰하고 있다. 휴전회담은 2년여 동안 지루하게 벌어져 그해 7월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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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74) 몰아낸 대륙의 군대
6·25전쟁에 투입된 병력은 출처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양 진영 각각 127여만 명이었다. 공산진영은 중공군 100만 명, 북한군 26만 명 정도였다. 이에 맞서 한국군 59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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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66) 고비는 넘겼으나
1952년 10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저격능선~삼각고지 사이의 고개에서 벌어진 전투 장면 모습이다. 중공군이 전차를 앞세우고 고지를 빼앗기 위해 진격하고 있다. 중공군은 휴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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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261) 박명림 연세대 교수 특별 기고
이승만 (1875~1965), 아이젠하워 (1890~1969)(왼쪽부터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대한 미국의 구두약속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의 대한정책을 신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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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 (260) 반공포로 석방의 충격
1953년 4월 거제도의 전쟁포로수용소에서 북한이나 중공으로 송환되기를 거부하는 이른바 ‘반공포로’들을 분류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해 6월 18일 이들을 전격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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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한국 대하소설
얼마 전 다음과 같은 독자 e-메일을 받았습니다. “문득 한국 대하소설의 역사가 궁금해졌습니다. 홍명희의 『임꺽정』, 이병주의 『지리산』은 우리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빼놓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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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 (259) 세계를 뒤흔든 한국발 뉴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 기간 중에 붙잡힌 공산 포로 중에서 반공 성향의 포로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그는 “반공 포로를 무조건 석방해 자유의 품에 안아야 한다”는 입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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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 (256) 이승만의 이상한 침묵
1953년 6월 초 판문점에서 유엔과 공산 측 휴전회담이 급속히 펼쳐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서울 등에서는 휴전에 반대하는 한국인들의 시위가 그치지 않았다. 중앙청 인근의 옛내자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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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 (251) 백악관을 가다
1955년 미 해군참모총장직에 올랐던 알레이 버크 제독(앞줄 오른쪽)이 57년 항공모함 새러토가에 승선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버크 제독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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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 (250) 오랜 전우의 메시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으로는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백선엽 장군(왼쪽에서 셋째)이 1953년 5월 포트베닝의 미 보병학교에 들러 유학 중이던 국군 지휘관들을 격려하고 있다. 미국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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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 (246) 미국 방문 초대장
1953년 4월 들어 한국에서는 휴전에 반대하는 시위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한국의 젊은 학생들이 서울에서 휴전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특히 외신기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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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 (241)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3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들이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 등 공산정권 지도자들의 초상화를 그려 전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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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 (240) 눈앞에 닥친 휴전
1953년 3월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사망과 함께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부쩍 속도를 냈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을 외치면서 휴전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사진은 서울 등 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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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39) 박정희와의 인연들
서울 지역을 관할하는 국군 제6관구 사령관으로 활동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가운데)이 미군과 환담 중이다. 1959년께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다. 이 당시의 계급은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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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38) 박정희 전력 또 도마 위에
1951년 3월 공산군 진지를 향해 미 해병들이 포격을 가하고 있다. 화력이 부족했던 국군은 공산군에 대적하기 위해 현대적인 포병을 양성하는 일이 아주 절박했다. 백선엽 육군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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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36) 새 미8군 사령관
1953년 7월 막바지 휴전협상이 벌어지고 있던 판문점에서 미군 최고 지휘관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오른쪽 첫째가 마크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셋째가 그해 2월 한국에 부임한 맥